‹ 목록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 정축일에 읽는 시 -차가운 땅 위에 작은 온기가 스며드는 날

"수요일, 간지와 시" / 26년 3월 4일, 정축(丁丑)일

「 일상의 가운데,

간지에 담긴 하루의 기운을

시의 언어로 바라보는 수요일입니다. 」


 ❄ ❄ ❄ ❄ ❄ ❄ ❄


오늘은 정축일(丁丑日) 입니다.


봄이 찾아오는 절기

경칩을 하루 앞둔 날이기도 합니다.


정화(丁火)는 작은 불입니다.

크게 타오르기보다

조용히 곁을 덥혀주는 불입니다.


축토(丑土)는 겨울의 땅입니다.

차갑고 단단하지만

그 안에는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정축일은

차가운 땅 위에 작은 온기가 놓인 날처럼

조용한 온기를 떠올리게 하는 하루입니다.


누군가를 압도하는 힘이 아니라

조용히 나누는 따뜻함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화의 온기를 축토에게 주는 것처럼

한 사람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시 한 편을 나눠봅니다.


 ❄ ❄ ❄ ❄ ❄ ❄ ❄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妻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시집 '수평선 넘어'(1953년,삼협문화사) -


 ❄ ❄ ❄ ❄ ❄ ❄ ❄


온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관계.


여러분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으신가요.


목록으로
카카오 채널 '낭만만세력' 친구 추가하면 매일매일 에세이를 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