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수요일
6월 10일 · 을묘(乙卯)일
「 일상의 가운데,
간지에 담긴 하루의 기운을
시와 생각의 언어로 바라보는 수요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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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을묘(乙卯)일입니다.
을목(乙木)은
들꽃과 덩굴, 가지처럼
유연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품고 있는 기운이죠.
묘목(卯木)은
을목의 뿌리를 단단히 받쳐주는
봄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같은 결을 이루는
간여지동의 날인 을묘일,
을목의 생명력 있는 기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오래 품고 있던 생각을
시작해보기에 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정 끝 별 시인의 「가지가 담을 넘을 때」를 함께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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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시인 —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 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 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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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넘어야 할 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담을 넘는다는 것이
언제나 힘으로 밀어내고
부수어야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지는 담을 향해 자라면서
때로는 기대고, 때로는 휘어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을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 길은
가지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죠.
뿌리와 꽃과 잎,
비와 바람, 그리고 담마저도
가지의 성장에 함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을묘일의 을목도 그렇습니다.
휘어질 수는 있어도
쉽게 꺾이지 않고,
천천히 자라면서도
결국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갑니다.
어쩌면 우리를 막아서는 것처럼 보였던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삶의 어려움들조차
나중에는
담을 함께 넘었던
고마운 도반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조금 느리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담을 넘어가고 있는 스스로를
응원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낭만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