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으니 한 가지 단서로 논해서는 안 되며, 요체는 부조하고 억제함이 그 마땅함을 얻는 데 있다. 〔원주〕 일주를 체(體)로 삼고 제강(提綱)을 용(用)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일주가 왕하면 제강의 식신·재성·관성이 모두 나의 쓰임이 되고, 일주가 약하면 제강에 [다른] 물건이 있어 일간을 도와 그 신을 제압하는 것도 모두 나의 쓰임이 된다. 제강을 체로 삼고 희신을 용으로 삼는 경우는 일주가 제강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제강의 식상·재관이 너무 왕하면 연·월·시 위의 인비(印比)를 취하여 희신으로 삼고, 제강의 인비가 너무 왕하면 연·월·시 위의 식상·재관을 취하여 희신으로 삼아 쓴다. 이 두 가지가 체용의 바른 법이다. 사주를 체로 삼는 경우가 있고, 화신(化神)을 체로 삼고 사주를 용으로 삼는 경우가 있으니, 화(化)가 참된 것은 곧 화신을 체로 삼고, 사주 중 화신과 서로 생하고 극하는 것을 취하여 용으로 삼는다. 사주를 체로 삼고 세운을 용으로 삼는 경우가 있고, 희신을 체로 삼고 희신을 보좌하는 신을 용으로 삼는 경우가 있으니, 기뻐하는 신이 스스로 쓰일 수 없어 체가 되고 희신을 보좌하는 신을 용으로 삼는 것이다. 격상(格象)을 체로 삼고 일주를 용으로 삼는 경우가 있으니, 반드시 팔격의 기상 및 암신(暗神)·화신(化神)·기신(忌神)·객신(客神)이 모두 한 덩어리를 이루어야 한다. 만약 한쪽 면의 격상이 일주와 무관하거나, 혹 일주를 너무 지나치게 상극하거나, 혹 일주를 너무 지나치게 부조하여, 그 사이에서 체용을 분별할 곳을 찾아도 또 형적이 없으면, 다만 일주가 스스로 가서 희신을 이끌어 생하게 하여 따로 하나의 활로를 구하여 용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일주를 용으로 삼는 경우가 있고, 용이 체보다 지나친 경우가 있다. 예컨대 식신·재성을 쓰는데 재관·식신이 모두 숨어 엎드려 있거나, 너무 드러나 들떠 있으면 비록 아름다워도 도를 지나친 것이다. 용이 서고 체가 행하는 경우가 있고, 체가 서고 용이 행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이 체용의 바른 이치이다. 만약 용신이 유행하는 땅으로 가지 못하고 또 체를 돕는 운으로 가면 묘하지 않다. 체와 용이 각각 서는 경우가 있으니, 체용이 모두 왕하여 승부가 나뉘지 않고 행운에도 경중상하가 없으면 각각 선다. 체와 용이 모두 막히는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목화(木火)가 모두 왕한데 금토(金土)를 만나지 못하면 모두 막히니, 한 가지 단서로 정할 수 없다. 그러나 체용의 용과 용신의 용은 구별이 있으니, 체용의 용을 용신으로 삼는 것도 진실로 안 되고, 이를 버리고 따로 용신을 구하는 것도 안 된다. 다만 체용을 참되게 짐작하여 여기에서 긴요한 것을 취하여 용신으로 삼아야 하며, 두세 곳, 네다섯 곳을 용신으로 삼는 것은 결코 묘한 명조가 아니니, 그 경중을 억양(抑揚)하여 남거나 부족함이 없게 해야 한다.
〔임철초 주〕 체(體)란 형상기국(形象氣局)을 이르니, 만약 형상기국이 없으면 곧 일주를 체로 삼는다. 용(用)이란 용신이니, 체용 외에 따로 용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원주에서는 체용과 용신에 구별이 있다고 하면서 또 상세히 밝히지 않았으니, 여전히 모호하게 끝맺은 것이다. 체용 외에 따로 용신을 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본문 끝 구절에 “요체는 부조하고 억제함이 그 마땅함을 얻는 데 있다”고 한 것을 음미하면, 체용의 용이 곧 용신임이 분명하여 의심할 것이 없다. 왕하면 억제하고 약하면 부조하는 것은 비록 바뀌지 않는 법이지만, 바뀌지 않는 가운데 바뀜이 있으니, 오직 “그 마땅함을 얻는다[得其宜]”는 세 글자를 살피는 데 있을 뿐이다. 왕하면 억제하되 억제할 수 없으면 도리어 부조해야 하고, 약하면 부조하되 부조할 수 없으면 도리어 억제해야 한다. 이것이 명리의 참된 기틀이요, 오행 전도(顚倒)의 묘용이다. 대개 왕함이 극에 달한 것을 억제하면 억제함이 도리어 격발시켜 해가 있으니 그 강함을 따라 부조해야 하고, 약함이 극에 달한 것을 부조하면 부조함이 헛수고로 공이 없으니 그 약함을 따라 억제해야 한다. 이것이 한 가지 단서로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일주가 왕하면 제강의 관성이나 재성이나 식상이 모두 용신이 될 수 있고, 일주가 쇠하면 따로 사주 간지 중 일간을 돕는 것을 찾아 용신으로 삼는다. 제강이 녹(祿)이나 양인(陽刃)이면 곧 제강을 체로 삼아 그 대세를 보고, 사주 간지의 식신·재성·관성 중 제자리를 얻은 것을 찾아 쓴다. 예컨대 사주 간지에 재성과 칠살이 지나치게 왕하여 일주가 왕한 가운데 약하게 변하면, 반드시 일간을 돕고 재살(財殺)을 제화(制化)하는 것을 찾아 쓴다. 일주를 체로 삼는 경우, 일주가 왕하고 인수가 많으면 반드시 재성을 용신으로 삼아야 하고, 일주가 왕하고 관살이 가벼우면 역시 재성을 용신으로 삼는다. 일주가 왕하고 비겁이 많아 나의 재성을 빼앗으면 식상을 용신으로 삼고, 일주가 왕하고 비겁이 많으며 재성이 가벼우면 역시 식상을 용신으로 삼는다. 일주가 왕하고 관성이 가벼우며 인수가 무거우면 재성을 용신으로 삼는다. 일주가 약하고 관살이 왕하면 인수를 용신으로 삼고, 일주가 약하고 식상이 많으면 역시 인수를 용신으로 삼으며, 일주가 약하고 재성이 왕하면 비겁을 용신으로 삼는다. 일주와 관살이 균등하면 식상을 용신으로 삼고, 일주와 재성이 대등하면 인비(印比)를 용신으로 삼는다. 이것이 모두 용신의 적당한 것이다. 예컨대 일주가 힘을 쓸 수 없어 다른 천간과 합하여 화(化)하는데, 화가 참된 것은 곧 화신을 체로 삼는다. 화신이 남으면 화신을 설하는 신을 용신으로 삼고, 화신이 부족하면 화신을 생조하는 신을 용신으로 삼는다. 방(方)·국(局)·곡직(曲直) 등 다섯 격은 일주가 원신이니, 곧 격상을 체로 삼고 기상을 생조하는 것을 용신으로 삼거나, 혹 식상을 용신으로 삼거나, 혹 재성을 용신으로 삼되, 다만 관살을 용신으로 삼는 것은 마땅치 않다. 마땅히 그 격국의 기세와 의향을 총체적으로 보아 쓸 것이며 하나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만약 격도 없고 국도 없으며 사주에 또 취할 용신이 없거나, 설령 취하더라도 혹 한신(閒神)에 합하여 묶이거나, 혹 충신(沖神)에 손상되거나, 혹 기신(忌神)에 겁탈·점거되거나, 혹 객신(客神)에 막히면, 용신이 일주를 돌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주도 용신을 돌볼 수 없다. 만약 세운이 그 합신을 깨고, 그 충신을 합하며, 그 겁점을 제압하고, 그 막힘을 통하게 하면, 이를 세운의 안돈(安頓)이라 하니, 세운에 따라 용신을 취하여도 역시 길함을 잃지 않는다. 원주에서 이르기를 “두세 곳, 네다섯 곳의 용신은 결코 묘한 명조가 아니다”라 하였는데, 이 말은 크게 틀렸다. 여덟 글자뿐인데 모두 네다섯 자를 용신으로 삼는다면, 이는 일간을 제외하고 두 자만 쓰지 않는 것이니, 결코 이런 이치는 없다. 요컨대 용신이 있든 없든 반드시 하나의 귀착처가 있으니, 확실히 바뀌지 않는다. 명(命) 가운데는 오직 희(喜)·용(用) 두 글자가 있을 뿐이니, 용신이란 일주가 기뻐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의지하는 신이며, 용신·희신·기신 외에는 모두 한신·객신이니, 배우는 이는 마땅히 살펴야 한다. 대체로 천간의 작용은 생하면 생하고, 극하면 극하고, 합하면 합하고, 충하면 충하여 취하기 쉬우나, 지지의 작용은 갖가지로 다른 것이 있으니, 그러므로 천간은 보기 쉽고 지지는 추론하기 어렵다. 丙寅 甲午 丙午 癸巳乙未 丙申 丁酉 戊戌 己亥 庚子 이는 화(火)가 한여름 영(令)에 태어나 월지에 양인(陽刃)을 깔고, 연지는 장생(長生)을 만나고 시지는 녹(祿)을 얻었으며, 연·월 두 천간에 또 갑병(甲丙)이 투출하여 맹렬한 불이 나무를 태우니 왕함이 극에 달하였고, 한 점 계수(癸水)는 졸아 말라 버렸으니 그 강한 세력을 따를 수밖에 없다. 운에서 목화토(木火土)를 만나 재물과 경사가 자주 늘었고, 신유(申酉) 운 중에는 형모가 여러 가지였으며, 해(亥) 운에 이르러 화(火)의 맹렬함을 격발하여 가업이 다 파하고 죽었다. 이른바 왕함이 극에 달한 것을 억제하면 도리어 격발시켜 해가 있다는 것이다. 병화(丙火)가 초가을에 태어나 가을 금(金)이 영을 잡고, 두 신(申)이 인(寅) 하나를 충거하니 병화(丙火)의 뿌리가 이미 뽑혀 비견도 힘을 쓸 수 없다. 연·월 두 천간에 또 토금(土金)이 투출하였으니 그 약한 세력을 따를 수밖에 없어, 재성의 성질에 순응하고 비견을 병(病)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운이 수왕지에 이르러 비견을 제거하니 사업이 우뚝하였고, 병인(丙寅)에 일간을 돕자 형상과 파모가 있었다. 이른바 약함이 극에 달한 것을 부조하면 헛수고로 공이 없고 도리어 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격국이 자못 많은데, 속론으로 하면 앞의 명조는 반드시 금수(金水)를 용신으로 삼고 이 명조는 반드시 목(木)을 용신으로 삼아, 길흉이 뒤바뀌게 되고 도리어 명리에 근거가 없다고 허물을 돌리니, 그러므로 특별히 두 명조를 적어 후세의 증거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