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妙)는 그 통변(通變)을 아는 데 있으니 서툰 말도 오히려 신묘하고, 무당과 소경은 줄 고르기에 어두우니 율려(律呂)를 바라기 어렵다.〔주〕무릇 사람의 명 중의 귀천과 득실은 그 묘처가 사주의 일·시 가운데 있으니, 후인이 그 통변을 알아 말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면 그 말이 비록 서툴러도 묘하게 응함이 신과 같다.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여 교묘한 말과 거짓된 말을 하면 어찌 이치에 맞겠는가? 만약 일자(日者)의 줄 고르기가 없다면 또 어찌 율려에 밝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