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데 처하여 움직임을 구하면, 극(剋)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옮기기 어렵다. 편안함에 거하여 위태로움을 물으면, 흉 가운데서 길을 점칠 수 있다.〔주〕 이 권의 끝에서 그 묘한 뜻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다. 정해진 데 처한다는 것은, 무릇 사람의 명을 말할 때 법을 써서 처하는 것은 그 귀천을 정하고자 함이다. 귀천이 이미 밝혀졌으므로 "정해진 데 처한다"고 하였다. 움직임을 구한다는 것은, 사람의 명에 비록 관인(官印)·재백(財帛)이 보이더라도 귀하거나 부유하지 않은 자는 마땅히 정해진 데 처하는 가운데 다시 그 변동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그 귀함 가운데 아직 귀하지 않고 재물 가운데 아직 재물이 되지 않음을 보면, 마땅히 극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옮기기 어려운 것이다.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승진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옮기기 어렵다는 것은 옮겨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위 글에서 "한 기를 쉬게 하여 정신을 모으고, 오행을 소멸시켜 도에 통한다"고 한 뜻과 다르지 않다. 편안함에 거한다는 것은, 예컨대 귀한 명이 관록이 향하여 복을 모으는 운을 가는 것을 보고 편안함으로 삼는 것이다. 위태로움을 묻는다는 것은, 곧바로 끝내 길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니, 하물며 앞에서 "길 가운데 흉이 있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연·월·시 가운데서 행년(行年)·태세(太歲)를 돕고 합하는 것, 삼합(三合)·삼회(三會)를 살피고,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신살(神煞)을 물어 참고하고 자세히 하여 말해야 한다. 만약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신이 보이면 반드시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일이 있으니, 마땅히 징계하고 선을 쌓아 이를 물리치면 흉 가운데서 다시 길하다. 『주역』에서 "회·린을 근심하는 것은 기미[介]에 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