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형(論衡) 13장 本性篇第十三 · 원문+번역원문+번역원문번역독음인쇄 창의 대상(프린터)에서 「PDF로 저장」을 고르세요. 휴대폰은 공유 → 인쇄 → PDF.

논형 論衡

王充
13장 本性篇第十三 · 원문+번역
원문: 위키문헌 등 공개 판본(교감본 아님) · 번역: AI 초벌 직역(검수 중)

本性篇第十三

情정性성者자,人인治치之지本본,禮예樂락所소由유生생也야。故고原원情정性성之지極극,禮예為위之지防방,樂낙為위之지節절。性성有유卑비謙겸辭사讓양,故고制제禮례以이適적其기宜의;情정有유好호惡악喜희怒로哀애樂락,故고作작樂락以이通통其기敬경。即즉所소以이制제,樂낙所소為위作작者자,情정與여性성也야。昔석儒유舊구生생,著저作작篇편章장,莫막不불論론說설,莫막能능實실定정。周주人인世세碩석,以이為위人인性성有유善선有유惡악,舉거人인之지善선性성,養양而이致치之지則칙善선長장;性성惡악,養양而이致치之지則칙惡악長장。如여此차,則칙性성各각有유陰음陽양,善선惡악在재所소養양焉언。故고世세子자作작《養양書서》一일篇편。密밀子자賤천、漆칠雕조開개、公공孫손尼니子자之지徒도,亦역論론情정性성,與여世세子자相상出출入입,皆개言언性성有유善선有유惡악。

정(情)과 성(性)은 사람을 다스리는 근본이며 예악(禮樂)이 말미암아 생겨난 바이다. 그러므로 정과 성의 끝을 따져서 예로 막고 악으로 절제한다. 성에는 낮추고 겸손하며 사양하는 것이 있으므로 예를 제정하여 그 마땅함에 맞게 하고, 정에는 좋아함·미워함·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있으므로 악을 지어 그 공경을 통하게 한다. 예가 제정되는 까닭과 악이 지어지는 까닭은 정과 성이다. 옛 유자와 옛 학자들이 편장(篇章)을 지으면서 논하여 말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나 실상을 확정한 이는 없었다. 주(周)나라 사람 세석(世碩)은 인성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다고 여겨, 사람의 선한 성을 들어 길러서 이루면 선이 자라고, 악한 성을 길러서 이루면 악이 자란다고 하였다. 이와 같다면 성에는 각각 음양이 있고, 선악은 기르는 바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세자(世子)는 『양서(養書)』 한 편을 지었다. 복자천(宓子賤)·칠조개(漆雕開)·공손니자(公孫尼子)의 무리도 정과 성을 논하였는데, 세자와 서로 드나들어 모두 성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다고 말하였다.

孟맹子자作작性성善선之지篇편,以이為위人인性성皆개善선,及급其기不불善선,物물亂란之지也야。謂위人인生생於어天천地지,皆개稟품善선性성,長장大대與여物물交교接접者자,放방縱종悖패亂란,不불善선日일以이生생矣의。若약孟맹子자之지言언,人인幼유小소之지時시,無무有유不불善선也야。微미子자曰왈「我아舊구云운孩해子자,王왕子자不불出출。」紂주為위孩해子자時시,微미子자睹도其기不불善선之지性성。性성惡악不불出출眾중庶서,長장大대為위亂란不불變변,故고云운也야。羊양舌설食식我아初초生생之지時시,叔숙姬희視시之지,及급堂당,聞문其기啼제聲성而이還환,曰왈:「其기聲성,豺시狼랑之지聲성也야。野야心심無무親친,非비是시莫막滅멸羊양舌설氏씨。」隧수不불肯긍見견。及급長장,祁기勝승為위亂란,食식我아與여焉언。

맹자(孟子)는 성선(性善)의 편을 지어, 인성은 모두 선하며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사물이 어지럽혔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천지에서 태어나 모두 선한 성을 받았는데, 자라서 사물과 접하면서 방종하고 어그러져 불선이 날로 생긴다고 하였다. 맹자의 말대로라면 사람이 어릴 때에는 선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러나] 미자(微子)는 「나는 예전에 [주가] 어린아이일 때 말하기를, 왕자(王子)가 [왕위에] 나서지 않기를 [바랐다].」라고 하였다. 주(紂)가 어린아이였을 때 미자가 그의 선하지 않은 성을 보았다. 성의 악함이 뭇 백성보다 뛰어나지 않았고, 자라서 어지럽힘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양설식아(羊舌食我)가 처음 태어났을 때 숙희(叔姬)가 그를 보러 당(堂)에 이르렀다가 그 울음소리를 듣고 돌아와 말하기를 「그 소리는 승냥이와 이리의 소리이다. 야심이 있어 친함이 없으니, 이 아이가 아니면 양설씨를 멸할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고는 끝내 보려 하지 않았다. 자라서 기승(祁勝)이 난을 일으키자 식아가 거기에 가담하였다.

國국人인殺살食식我아。羊양舌설氏씨由유是시滅멸矣의。紂주之지惡악在재孩해子자之지時시,食식我아之지亂란見견始시生생之지聲성。孩해子자始시生생,未미與여物물接접,誰수令령悖패者자?丹단朱주〔生생〕於어唐당宮궁,商상均균生생於어虞우室실。唐당、虞우之지時시,可가比비屋옥而이封봉,所소與여接접者자,必필多다善선矣의。二이帝제之지旁방,必필多다賢현也야。然연而이丹단朱주傲오,商상均균虐학,并병失실帝제統통,歷역世세為위戒계。且차孟맹子자相상人인眸모子자焉언,心심清청而이眸모子자了료,心심濁탁而이眸모子자。人인生생目목輒첩了료,了요稟품之지於어天천,不불同동氣기也야;非비幼유小소之지時시了료,長장大대與여人인接접,乃내更경也야。性성本본自자然연,善선惡악有유質질。孟맹子자之지言언情정性성,未미為위實실也야。然연而이性성善선之지論론,亦역有유所소緣연。

나라 사람들이 식아를 죽였다. 양설씨는 이로 말미암아 멸하였다. 주의 악은 어린아이 때에 있었고, 식아의 난은 처음 태어났을 때의 소리에서 드러났다.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나 아직 사물과 접하지 않았는데 누가 어그러지게 하였는가? 단주(丹朱)는 당(唐)의 궁궐에서 태어났고[生], 상균(商均)은 우(虞)의 집에서 태어났다. 당·우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할 만하였으니, 그들과 접한 이들은 반드시 선한 이가 많았을 것이다. 두 임금의 곁에는 반드시 현인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단주는 오만하고 상균은 포학하여 둘 다 제왕의 대통을 잃고 대대로 경계가 되었다. 또 맹자는 사람의 눈동자로 상을 보았으니, 마음이 맑으면 눈동자가 밝고 마음이 흐리면 눈동자가 [흐리다]고 하였다. 사람은 태어날 때 눈이 곧 밝은데, 밝음은 하늘에서 받는 것이어서 기운이 같지 않은 것이다. 어릴 때에는 밝다가 자라서 사람과 접하면서 비로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성은 본디 자연이어서 선악에 바탕이 있다. 맹자가 정과 성을 말한 것은 실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성선의 논의에도 말미암은 바가 있다.

或혹仁인或혹義의,性성朮출乖괴也야。動동作작趨추翔상,性성識식詭궤也야。面면色색或혹白백或혹黑흑,身신形형或혹長장或혹短단,至지老로極극死사,不불可가變변易역,天천性성然연也야。皆개知지水수土토物물器기形형性성不불同동,而이莫막知지善선惡악稟품之지異이也야。一일歲세嬰영兒아無무爭쟁奪탈之지心심,長장大대之지後후,或혹漸점利리色색,狂광心심悖패行행,由유此차生생也야。告고子자與여孟맹子자同동時시,其기論론性성無무善선惡악之지分분,譬비之지湍단水수,決결之지東동則칙東동,決결之지西서則칙西서,夫부水수無무分분於어東동西서,猶유人인無무分분於어善선惡악也야。

혹은 어질고 혹은 의로운 것은 성의 기술[性術]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달리고 나는 것은 성의 식별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굴빛이 혹은 희고 혹은 검으며, 몸이 혹은 길고 혹은 짧은 것이 늙어 죽음에 이르도록 바꿀 수 없는 것은 천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모두 물·흙·사물·그릇의 형체와 성질이 같지 않음은 알면서도, 선악을 받은 것이 다름은 알지 못한다. 한 살 된 갓난아이는 다투어 빼앗는 마음이 없으나, 자란 뒤에는 혹 이익과 색에 점점 [물들어], 미친 마음과 어그러진 행실이 이로 말미암아 생긴다. 고자(告子)는 맹자와 같은 때 사람인데, 그의 성론은 선악의 구분이 없다는 것으로, 이를 여울물에 비유하여 동쪽으로 터 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 주면 서쪽으로 흐르니, 무릇 물이 동서의 구분이 없는 것은 사람에게 선악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夫부告고子자之지言언,謂위人인之지性성與여水수同동也야。以이性성若약水수,可가以이水수喻유性성,猶유金금之지為위金금,水수之지為위水수也야。人인善선因인善선,惡악亦역因인惡악。初초稟품天천然연之지姿자,受수純순壹일之지質질,故고生생而이兆조見견,善선惡악可가察찰。無무分분於어善선惡악,可가推추移이者자,謂위中중人인也야,不불善선不불惡악,須수教교成성者자也야。故고孔공子자曰왈:「中중人인以이上상可가以이語어上상也야,中중人인以이下하不불可가以이語어上상也야。」告고子자之지以이決결水수喻유者자,徒도謂위中중人인,不불指지極극善선極극惡악也야。孔공子자曰왈:「性성相상近근也야,習습相상遠원也야。」夫부中중人인之지性성,在재所소習습焉언。習습善선而이為위善선,習습惡악而이為위惡악也야。至지於어極극善선極극惡악,非비復복在재習습。故고孔공子자曰왈:「惟유上상智지與여下하愚우不불移이。」性성有유善선不불善선,聖성化화賢현教교,不불能능復복移이易역也야。孔공子자道도德덕之지祖조,諸제子자之지中중最최卓탁者자也야,而이曰왈「上상智지下하愚우不불移이」,故고知지告고子자之지言언,未미得득實실也야。夫부告고子자之지言언,亦역有유緣연也야。《詩시》曰왈:「彼피姝주之지子자,何하以이與여之지?」其기傳전曰왈:「譬비猶유練련絲사,染염之지藍람則칙青청,染염之지朱주則칙赤적。」夫부決결水수使사之지東동西서,猶유染염絲사令령之지青청赤적也야。

무릇 고자의 말은 사람의 성이 물과 같다는 것이다. 성이 물과 같다면 물로 성을 비유할 수 있으니, 금이 금이 되고 물이 물이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선하면 선에 말미암고, 악하면 또한 악에 말미암는다. 처음에 천연의 자질을 받고 순일한 바탕을 받으므로 태어나면서 조짐이 드러나 선악을 살필 수 있다. 선악의 구분이 없어 옮겨 갈 수 있는 자는 중인(中人)을 이르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 가르침을 받아 이루어져야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중인 이상은 높은 것을 말해 줄 수 있고, 중인 이하는 높은 것을 말해 줄 수 없다.」라고 하였다. 고자가 물을 터 주는 것으로 비유한 것은 한갓 중인을 이른 것이지, 지극히 선하고 지극히 악한 자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성은 서로 가깝고, 습(習)은 서로 멀다.」라고 하였다. 무릇 중인의 성은 익히는 바에 달려 있다. 선을 익히면 선하게 되고 악을 익히면 악하게 된다. 지극히 선하고 지극히 악한 데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익힘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오직 상지(上智)와 하우(下愚)는 옮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성에 선과 불선이 있어 성인의 교화와 현인의 가르침으로도 다시 옮겨 바꿀 수 없다. 공자는 도덕의 조종이며 제자(諸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인데, 「상지와 하우는 옮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고자의 말이 실상을 얻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릇 고자의 말에도 말미암은 바가 있다. 『시』에 이르기를 「저 아름다운 사람에게 무엇을 줄까?」라고 하였는데, 그 전(傳)에 이르기를 「비유하자면 누인 실과 같아서 쪽으로 물들이면 푸르고, 주사로 물들이면 붉다.」라고 하였다. 무릇 물을 터서 동서로 흐르게 하는 것은 실을 물들여 푸르고 붉게 하는 것과 같다.

丹단朱주、商상均균已이染염於어唐당、虞우之지化화矣의,然연而이丹단朱주傲오而이商상均균虐학者자,至지惡악之지質질,不불受수藍람朱주變변也야。孫손卿경有유反반孟맹子자,作작《性성惡악》之지篇편,以이為위人인性성惡악,其기善선者자偽위也야。性성惡악者자,以이為위人인生생皆개得득惡악性성也야。偽위者자,長장大대之지後후,勉면使사為위善선也야。若약孫손卿경之지言언,人인幼유小소無무有유善선也야。稷직為위兒아,以이種종樹수為위戲희;孔공子자能능行행,以이俎조豆두為위弄롱。石석生생而이堅견,蘭난生생而이香향。稟품善선氣기,長장大대就취成성,故고種종樹수之지戲희為위唐당司사馬마,俎조豆두之지弄롱為위周주聖성師사。稟품蘭란石석之지性성,故고有유堅견香향之지驗험。夫부孫손卿경之지言언,未미為위得득實실。然연而이性성惡악之지言언,有유緣연也야。一일對대嬰영兒아,無무推추讓양之지心심,見견食식,號호欲욕食식之지;睹도好호,啼제欲욕玩완之지。長장大대之지後후,禁금情정割할欲욕,勉면勵려為위善선矣의。劉유子자政정非비之지曰왈:「如여此차,則칙天천無무氣기也야。陰음陽양善선惡악之지相상當당,則칙人인之지為위善선安안從종生생?」

단주와 상균은 이미 당·우의 교화에 물들었는데도 단주가 오만하고 상균이 포학한 것은, 지극히 악한 바탕이어서 쪽과 주사의 변화를 받지 않은 것이다. 손경(孫卿)은 맹자에 반대하여 「성악(性惡)」 편을 지어, 인성은 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僞]라고 여겼다. 성이 악하다는 것은 사람은 태어나면서 모두 악한 성을 얻는다는 것이다. 인위라는 것은 자란 뒤에 힘써 선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손경의 말대로라면 사람은 어릴 때 선함이 없다. [그러나] 후직(后稷)은 아이였을 때 나무 심기를 놀이로 삼았고, 공자는 걸을 수 있게 되자 제기[俎豆]를 가지고 놀았다. 돌은 나면서부터 단단하고 난초는 나면서부터 향기롭다. 선한 기운을 받아 자라서 이루어지므로, 나무 심기 놀이를 하던 이는 당(唐)의 사마가 되었고, 제기를 가지고 놀던 이는 주(周)의 성스러운 스승이 되었다. 난초와 돌의 성을 받았으므로 단단하고 향기로운 징험이 있는 것이다. 무릇 손경의 말은 실상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악의 말에도 말미암은 바가 있다. 한 쌍의 갓난아이는 미루어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 먹을 것을 보면 부르짖으며 먹고자 하고, 좋은 것을 보면 울며 가지고 놀고자 한다. 자란 뒤에는 정을 금하고 욕심을 끊어 힘써 선을 행한다. 유자정(劉子政)이 이를 비판하여 말하기를 「이와 같다면 하늘에는 기운이 없는 것이다. 음양과 선악이 서로 대등하다면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어디에서 생기겠는가?」라고 하였다.

陸육賈가曰왈:「天천地지生생人인也야,以이禮례義의之지性성。人인能능察찰己기所소以이受수命명則칙順순,順순之지謂위道도。」夫부陸륙賈가知지人인禮례義의為위性성,人인亦역能능察찰所소以이受수命명。性성善선者자,不불待대察찰而이自자善선;性성惡악者자,雖수能능察찰之지,猶유背배禮례畔반義의,義의挹읍於어善선不불能능為위也야。故고貪탐者자能능言언廉렴,亂난者자能능言언治치。盜도蹠척非비人인之지竊절也야,庄장刺자人인之지濫람也야,明명能능察찰己기,口구能능論론賢현,性성惡악不불為위,何하益익於어善선?陸육賈가之지言언未미能능得득實실。

육가(陸賈)가 말하기를 "천지가 사람을 낳을 때 예의(禮義)의 성(性)으로써 한다. 사람이 자기가 명(命)을 받은 까닭을 살필 수 있으면 순(順)하고, 순한 것을 도(道)라 한다."라고 하였다. 육가는 사람이 예의를 성으로 삼는다는 것을 알았고, 사람이 또한 명을 받은 까닭을 살필 수 있다고 알았다. 성이 선한 자는 살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 선하고, 성이 악한 자는 비록 그것을 살필 수 있더라도 여전히 예를 등지고 의를 배반하니, 의로써 선으로 이끌어도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탐욕스러운 자도 청렴을 말할 수 있고, 어지러운 자도 다스림을 말할 수 있다. 도척(盜蹠)은 남의 도둑질을 비난하고 장교(庄蹻)는 남의 방종을 꾸짖으니, 밝음은 자기를 살필 수 있고 입은 현명함을 논할 수 있으나 성이 악하여 행하지 않으니 선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육가의 말은 실상을 얻지 못하였다.

董동仲중舒서覽람孫손、孟맹之지書서,作작情정性성之지說설曰왈:「天천之지大대經경,一일陰음一일陽양。人인之지大대經경,一일情정一일性성。性성生생於어陽양,情정生생於어陰음。陰음氣기鄙비,陽양氣기仁인。曰왈性성善선者자,是시見견其기陽양也야。謂위惡악者자,是시見견其기陰음者자也야。」若약仲중舒서之지言언,謂위孟맹子자見견其기陽양,孫손卿경見견其기陰음也야。處처二이家가各각有유見견,可가也야。不불處처人인情정性성,情정性성有유善선有유惡악,未미也야。夫부人인情정性성同동生생於어陰음陽양,其기生생於어陰음陽양,有유渥악有유泊박。玉옥生생於어石석,有유純순有유駁박,性성情정〔生생〕於어陰음陽양,安안能능純순善선?仲중舒서之지言언,未미能능得득實실。

동중서(董仲舒)가 손경(孫卿)·맹자(孟子)의 책을 보고 정성(情性)의 설을 지어 말하기를 "하늘의 큰 법(大經)은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는 것이다. 사람의 큰 법은 한 번 정(情)이고 한 번 성(性)이다. 성은 양에서 생기고 정은 음에서 생긴다. 음기는 비루하고 양기는 어질다. 성이 선하다고 말하는 자는 그 양을 본 것이다. 악하다고 말하는 자는 그 음을 본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서의 말대로라면 맹자는 그 양을 보았고 손경은 그 음을 보았다는 것이다. 두 학파가 각기 본 바가 있다고 판정한 것은 옳다. 사람의 정성을 판정하지 않았으니, 정성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으므로 미진하다. 무릇 사람의 정과 성은 함께 음양에서 생기는데, 음양에서 생기는 것에는 두터움과 엷음이 있다. 옥은 돌에서 생기지만 순수한 것도 있고 섞인 것도 있으니, 성정이 음양에서 [생기는데] 어찌 순전히 선할 수 있겠는가? 중서의 말은 실상을 얻지 못하였다.

劉유子자政정曰왈:「性성,生생而이然연者자也야,在재於어身신而이不불發발。情정,接접於어物물而이然연者자也야,出출形형於어外외。形형外외則칙謂위之지陽양,不불發발者자則칙謂위之지陰음。」夫부子자政정之지言언,謂위性성在재身신而이不불發발。情정接접於어物물,形형出출於어外외,故고謂위之지陽양;性성不불發발,不불與여物물接접,故고謂위之지陰음。夫부如여子자政정之지言언,乃내謂위情정為위陽양、性성為위陰음也야;不불據거本본所소生생起기,苟구以이形형出출與여不불發발見견定정陰음陽양也야。必필以이形형出출為위陽양,性성亦역與여物물接접,造조此차必필於어是시,顛전沛패必필於어是시。惻측隱은,不불忍인;不불忍인,仁인之지氣기也야。卑비歉겸辭사讓양,性성之지發발也야。有유與여接접會회,故고惻측隱은卑비謙겸,形형出출於어外외。謂위性성在재內내不불與여物물接접,恐공非비其기實실。不불論론性성之지善선惡악,徒도議의外외內내陰음陽양,理이難난以이知지。且차從종子자政정之지言언,以이性성為위陰음,情정為위陽양,夫부人인稟품情정,竟경有유善선惡악不불也야?

유자정(劉子政)이 말하기를 "성은 태어나면서 그러한 것으로, 몸에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는다. 정은 사물과 접하여 그러한 것으로, 밖으로 형체를 드러낸다. 밖으로 드러나면 양이라 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음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자정의 말은 성이 몸에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정은 사물과 접하여 형체가 밖으로 나오므로 양이라 하고, 성은 드러나지 않고 사물과 접하지 않으므로 음이라 한 것이다. 자정의 말대로라면 곧 정을 양으로, 성을 음으로 여기는 것이니, 본래 생겨난 근원에 의거하지 않고 구차하게 형체가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으로 음양을 정한 것이다. 반드시 형체가 드러나는 것을 양이라 한다면 성 또한 사물과 접하니, 다급할 때에도 반드시 여기에 있고, 넘어질 때에도 반드시 여기에 있다. 측은(惻隱)은 차마 하지 못함이고, 차마 하지 못함은 인(仁)의 기운이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며 사양하는 것은 성이 드러난 것이다. 접하여 만나는 것이 있으므로 측은과 낮추고 겸손함이 밖으로 형체를 드러낸다. 성이 안에 있어 사물과 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마 그 실상이 아닐 것이다. 성의 선악을 논하지 않고 한갓 안팎과 음양만 논하니, 이치를 알기 어렵다. 또 자정의 말을 따라 성을 음으로, 정을 양으로 삼는다면, 사람이 품부받은 정에는 끝내 선악이 있는가 없는가?

自자孟맹子자以이下하至지劉류子자政정,鴻홍儒유博박生생,聞문見견多다矣의。然연而이論론情정性성,竟경無무定정是시。唯유世세碩석、公공孫손尼니子자之지徒도,頗파得득其기正정。由유此차言언之지,事사易역知지,道도難난論론也야。酆풍文문茂무記기,繁번如여榮영華화,恢회諧해劇극談담,甘감如여飴이蜜밀,未미必필得득實실。實실者자,人인性성有유善선有유惡악,猶유人인才재有유高고有유下하也야。高고不불可가下하,下하不불可가高고。謂위性성無무善선惡악,是시謂위人인才재無무高고下하也야。稟품性성受수命명,同동一일實실也야。命명有유貴귀賤천,性성有유善선惡악。謂위性성無무善선惡악,是시謂위人인命명無무貴귀賤천也야。

맹자로부터 아래로 유자정에 이르기까지 큰 학자와 박식한 선비들은 듣고 본 것이 많았다. 그러나 정성을 논한 것은 끝내 정해진 옳음이 없다. 오직 세석(世碩)(儒)·공손니자(公孫尼子)의 무리만이 자못 그 바름을 얻었다. 이로써 말하면, 일은 알기 쉬우나 도는 논하기 어렵다. 풍부한 문장과 무성한 기록은 번성하기가 꽃과 같고, 익살과 거침없는 담론은 달기가 엿과 꿀 같으나, 반드시 실상을 얻은 것은 아니다. 실상은, 사람의 성에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이 사람의 재주에 높음도 있고 낮음도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높은 것은 낮게 할 수 없고, 낮은 것은 높게 할 수 없다. 성에 선악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재주에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성을 품부받는 것과 명을 받는 것은 똑같은 하나의 실상이다. 명에는 귀천이 있고 성에는 선악이 있다. 성에 선악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九구州주田전土토之지性성,善선惡악不불均균。故고有유黃황赤적黑흑之지別별,上상中중下하之지差차。水수潦료不불同동,故고有유清청濁탁之지流류,東동西서南남北북之지趨추。人인稟품天천地지之지性성,懷회五오常상之지氣기,或혹仁인或혹義의,性성朮출乖괴也야;動동作작趨추翔상,或혹重중或혹輕경,性성識식詭궤也야;面면色색或혹白백或혹黑흑,身신形형或혹長장或혹短단,至지老로極극死사不불可가變변易역,天천性성然연也야。余여固고以이孟맹軻가言언人인性성善선者자,中중人인以이上상者자也야;孫손卿경言언人인性성惡악者자,中중人인以이下하者자也야;揚양雄웅言언人인性성善선惡악混혼者자,中중人인也야。若약反반經경合합道도,則칙可가以이為위教교;盡진性성之지理리,則칙未미也야。

구주(九州) 전토(田土)의 성질은 좋고 나쁨이 고르지 않다. 그러므로 황색·적색·흑색의 구별과 상·중·하의 차등이 있다. 물과 큰물이 같지 않으므로 맑고 흐린 흐름과 동서남북으로 향하는 방향이 있다. 사람은 천지의 성을 품부받고 오상(五常)의 기를 품어, 어떤 이는 인(仁)하고 어떤 이는 의(義)하니 성술(性術)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행동하며 나아가고 날아오름에 어떤 이는 무겁고 어떤 이는 가벼우니 성식(性識)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굴빛이 어떤 이는 희고 어떤 이는 검으며, 몸의 형체가 어떤 이는 길고 어떤 이는 짧아, 늙어 죽음에 이르도록 바꿀 수 없으니 천성이 그러한 것이다. 나는 본래 맹가(孟軻)가 사람의 성이 선하다고 말한 것은 중인(中人) 이상이고, 손경이 사람의 성이 악하다고 말한 것은 중인 이하이며, 양웅(揚雄)이 사람의 성이 선악이 섞였다고 말한 것은 중인이라고 여긴다. 경(經)에 반하되 도에 합하는 것이라면 가르침으로 삼을 수 있으나, 성의 이치를 다한 것으로는 아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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