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형(論衡) 13장 本性篇第十三 · 번역원문+번역원문번역인쇄 창의 대상(프린터)에서 「PDF로 저장」을 고르세요. 휴대폰은 공유 → 인쇄 → PDF.

논형 論衡

王充
13장 本性篇第十三 · 번역
원문: 위키문헌 등 공개 판본(교감본 아님) · 번역: AI 초벌 직역(검수 중)

本性篇第十三

정(情)과 성(性)은 사람을 다스리는 근본이며 예악(禮樂)이 말미암아 생겨난 바이다. 그러므로 정과 성의 끝을 따져서 예로 막고 악으로 절제한다. 성에는 낮추고 겸손하며 사양하는 것이 있으므로 예를 제정하여 그 마땅함에 맞게 하고, 정에는 좋아함·미워함·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있으므로 악을 지어 그 공경을 통하게 한다. 예가 제정되는 까닭과 악이 지어지는 까닭은 정과 성이다. 옛 유자와 옛 학자들이 편장(篇章)을 지으면서 논하여 말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나 실상을 확정한 이는 없었다. 주(周)나라 사람 세석(世碩)은 인성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다고 여겨, 사람의 선한 성을 들어 길러서 이루면 선이 자라고, 악한 성을 길러서 이루면 악이 자란다고 하였다. 이와 같다면 성에는 각각 음양이 있고, 선악은 기르는 바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세자(世子)는 『양서(養書)』 한 편을 지었다. 복자천(宓子賤)·칠조개(漆雕開)·공손니자(公孫尼子)의 무리도 정과 성을 논하였는데, 세자와 서로 드나들어 모두 성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다고 말하였다.

맹자(孟子)는 성선(性善)의 편을 지어, 인성은 모두 선하며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사물이 어지럽혔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천지에서 태어나 모두 선한 성을 받았는데, 자라서 사물과 접하면서 방종하고 어그러져 불선이 날로 생긴다고 하였다. 맹자의 말대로라면 사람이 어릴 때에는 선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러나] 미자(微子)는 「나는 예전에 [주가] 어린아이일 때 말하기를, 왕자(王子)가 [왕위에] 나서지 않기를 [바랐다].」라고 하였다. 주(紂)가 어린아이였을 때 미자가 그의 선하지 않은 성을 보았다. 성의 악함이 뭇 백성보다 뛰어나지 않았고, 자라서 어지럽힘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양설식아(羊舌食我)가 처음 태어났을 때 숙희(叔姬)가 그를 보러 당(堂)에 이르렀다가 그 울음소리를 듣고 돌아와 말하기를 「그 소리는 승냥이와 이리의 소리이다. 야심이 있어 친함이 없으니, 이 아이가 아니면 양설씨를 멸할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고는 끝내 보려 하지 않았다. 자라서 기승(祁勝)이 난을 일으키자 식아가 거기에 가담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식아를 죽였다. 양설씨는 이로 말미암아 멸하였다. 주의 악은 어린아이 때에 있었고, 식아의 난은 처음 태어났을 때의 소리에서 드러났다.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나 아직 사물과 접하지 않았는데 누가 어그러지게 하였는가? 단주(丹朱)는 당(唐)의 궁궐에서 태어났고[生], 상균(商均)은 우(虞)의 집에서 태어났다. 당·우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할 만하였으니, 그들과 접한 이들은 반드시 선한 이가 많았을 것이다. 두 임금의 곁에는 반드시 현인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단주는 오만하고 상균은 포학하여 둘 다 제왕의 대통을 잃고 대대로 경계가 되었다. 또 맹자는 사람의 눈동자로 상을 보았으니, 마음이 맑으면 눈동자가 밝고 마음이 흐리면 눈동자가 [흐리다]고 하였다. 사람은 태어날 때 눈이 곧 밝은데, 밝음은 하늘에서 받는 것이어서 기운이 같지 않은 것이다. 어릴 때에는 밝다가 자라서 사람과 접하면서 비로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성은 본디 자연이어서 선악에 바탕이 있다. 맹자가 정과 성을 말한 것은 실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성선의 논의에도 말미암은 바가 있다.

혹은 어질고 혹은 의로운 것은 성의 기술[性術]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달리고 나는 것은 성의 식별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굴빛이 혹은 희고 혹은 검으며, 몸이 혹은 길고 혹은 짧은 것이 늙어 죽음에 이르도록 바꿀 수 없는 것은 천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모두 물·흙·사물·그릇의 형체와 성질이 같지 않음은 알면서도, 선악을 받은 것이 다름은 알지 못한다. 한 살 된 갓난아이는 다투어 빼앗는 마음이 없으나, 자란 뒤에는 혹 이익과 색에 점점 [물들어], 미친 마음과 어그러진 행실이 이로 말미암아 생긴다. 고자(告子)는 맹자와 같은 때 사람인데, 그의 성론은 선악의 구분이 없다는 것으로, 이를 여울물에 비유하여 동쪽으로 터 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 주면 서쪽으로 흐르니, 무릇 물이 동서의 구분이 없는 것은 사람에게 선악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무릇 고자의 말은 사람의 성이 물과 같다는 것이다. 성이 물과 같다면 물로 성을 비유할 수 있으니, 금이 금이 되고 물이 물이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선하면 선에 말미암고, 악하면 또한 악에 말미암는다. 처음에 천연의 자질을 받고 순일한 바탕을 받으므로 태어나면서 조짐이 드러나 선악을 살필 수 있다. 선악의 구분이 없어 옮겨 갈 수 있는 자는 중인(中人)을 이르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 가르침을 받아 이루어져야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중인 이상은 높은 것을 말해 줄 수 있고, 중인 이하는 높은 것을 말해 줄 수 없다.」라고 하였다. 고자가 물을 터 주는 것으로 비유한 것은 한갓 중인을 이른 것이지, 지극히 선하고 지극히 악한 자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성은 서로 가깝고, 습(習)은 서로 멀다.」라고 하였다. 무릇 중인의 성은 익히는 바에 달려 있다. 선을 익히면 선하게 되고 악을 익히면 악하게 된다. 지극히 선하고 지극히 악한 데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익힘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오직 상지(上智)와 하우(下愚)는 옮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성에 선과 불선이 있어 성인의 교화와 현인의 가르침으로도 다시 옮겨 바꿀 수 없다. 공자는 도덕의 조종이며 제자(諸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인데, 「상지와 하우는 옮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고자의 말이 실상을 얻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릇 고자의 말에도 말미암은 바가 있다. 『시』에 이르기를 「저 아름다운 사람에게 무엇을 줄까?」라고 하였는데, 그 전(傳)에 이르기를 「비유하자면 누인 실과 같아서 쪽으로 물들이면 푸르고, 주사로 물들이면 붉다.」라고 하였다. 무릇 물을 터서 동서로 흐르게 하는 것은 실을 물들여 푸르고 붉게 하는 것과 같다.

단주와 상균은 이미 당·우의 교화에 물들었는데도 단주가 오만하고 상균이 포학한 것은, 지극히 악한 바탕이어서 쪽과 주사의 변화를 받지 않은 것이다. 손경(孫卿)은 맹자에 반대하여 「성악(性惡)」 편을 지어, 인성은 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僞]라고 여겼다. 성이 악하다는 것은 사람은 태어나면서 모두 악한 성을 얻는다는 것이다. 인위라는 것은 자란 뒤에 힘써 선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손경의 말대로라면 사람은 어릴 때 선함이 없다. [그러나] 후직(后稷)은 아이였을 때 나무 심기를 놀이로 삼았고, 공자는 걸을 수 있게 되자 제기[俎豆]를 가지고 놀았다. 돌은 나면서부터 단단하고 난초는 나면서부터 향기롭다. 선한 기운을 받아 자라서 이루어지므로, 나무 심기 놀이를 하던 이는 당(唐)의 사마가 되었고, 제기를 가지고 놀던 이는 주(周)의 성스러운 스승이 되었다. 난초와 돌의 성을 받았으므로 단단하고 향기로운 징험이 있는 것이다. 무릇 손경의 말은 실상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악의 말에도 말미암은 바가 있다. 한 쌍의 갓난아이는 미루어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 먹을 것을 보면 부르짖으며 먹고자 하고, 좋은 것을 보면 울며 가지고 놀고자 한다. 자란 뒤에는 정을 금하고 욕심을 끊어 힘써 선을 행한다. 유자정(劉子政)이 이를 비판하여 말하기를 「이와 같다면 하늘에는 기운이 없는 것이다. 음양과 선악이 서로 대등하다면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어디에서 생기겠는가?」라고 하였다.

육가(陸賈)가 말하기를 "천지가 사람을 낳을 때 예의(禮義)의 성(性)으로써 한다. 사람이 자기가 명(命)을 받은 까닭을 살필 수 있으면 순(順)하고, 순한 것을 도(道)라 한다."라고 하였다. 육가는 사람이 예의를 성으로 삼는다는 것을 알았고, 사람이 또한 명을 받은 까닭을 살필 수 있다고 알았다. 성이 선한 자는 살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 선하고, 성이 악한 자는 비록 그것을 살필 수 있더라도 여전히 예를 등지고 의를 배반하니, 의로써 선으로 이끌어도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탐욕스러운 자도 청렴을 말할 수 있고, 어지러운 자도 다스림을 말할 수 있다. 도척(盜蹠)은 남의 도둑질을 비난하고 장교(庄蹻)는 남의 방종을 꾸짖으니, 밝음은 자기를 살필 수 있고 입은 현명함을 논할 수 있으나 성이 악하여 행하지 않으니 선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육가의 말은 실상을 얻지 못하였다.

동중서(董仲舒)가 손경(孫卿)·맹자(孟子)의 책을 보고 정성(情性)의 설을 지어 말하기를 "하늘의 큰 법(大經)은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는 것이다. 사람의 큰 법은 한 번 정(情)이고 한 번 성(性)이다. 성은 양에서 생기고 정은 음에서 생긴다. 음기는 비루하고 양기는 어질다. 성이 선하다고 말하는 자는 그 양을 본 것이다. 악하다고 말하는 자는 그 음을 본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서의 말대로라면 맹자는 그 양을 보았고 손경은 그 음을 보았다는 것이다. 두 학파가 각기 본 바가 있다고 판정한 것은 옳다. 사람의 정성을 판정하지 않았으니, 정성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으므로 미진하다. 무릇 사람의 정과 성은 함께 음양에서 생기는데, 음양에서 생기는 것에는 두터움과 엷음이 있다. 옥은 돌에서 생기지만 순수한 것도 있고 섞인 것도 있으니, 성정이 음양에서 [생기는데] 어찌 순전히 선할 수 있겠는가? 중서의 말은 실상을 얻지 못하였다.

유자정(劉子政)이 말하기를 "성은 태어나면서 그러한 것으로, 몸에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는다. 정은 사물과 접하여 그러한 것으로, 밖으로 형체를 드러낸다. 밖으로 드러나면 양이라 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음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자정의 말은 성이 몸에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정은 사물과 접하여 형체가 밖으로 나오므로 양이라 하고, 성은 드러나지 않고 사물과 접하지 않으므로 음이라 한 것이다. 자정의 말대로라면 곧 정을 양으로, 성을 음으로 여기는 것이니, 본래 생겨난 근원에 의거하지 않고 구차하게 형체가 드러남과 드러나지 않음으로 음양을 정한 것이다. 반드시 형체가 드러나는 것을 양이라 한다면 성 또한 사물과 접하니, 다급할 때에도 반드시 여기에 있고, 넘어질 때에도 반드시 여기에 있다. 측은(惻隱)은 차마 하지 못함이고, 차마 하지 못함은 인(仁)의 기운이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며 사양하는 것은 성이 드러난 것이다. 접하여 만나는 것이 있으므로 측은과 낮추고 겸손함이 밖으로 형체를 드러낸다. 성이 안에 있어 사물과 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마 그 실상이 아닐 것이다. 성의 선악을 논하지 않고 한갓 안팎과 음양만 논하니, 이치를 알기 어렵다. 또 자정의 말을 따라 성을 음으로, 정을 양으로 삼는다면, 사람이 품부받은 정에는 끝내 선악이 있는가 없는가?

맹자로부터 아래로 유자정에 이르기까지 큰 학자와 박식한 선비들은 듣고 본 것이 많았다. 그러나 정성을 논한 것은 끝내 정해진 옳음이 없다. 오직 세석(世碩)(儒)·공손니자(公孫尼子)의 무리만이 자못 그 바름을 얻었다. 이로써 말하면, 일은 알기 쉬우나 도는 논하기 어렵다. 풍부한 문장과 무성한 기록은 번성하기가 꽃과 같고, 익살과 거침없는 담론은 달기가 엿과 꿀 같으나, 반드시 실상을 얻은 것은 아니다. 실상은, 사람의 성에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이 사람의 재주에 높음도 있고 낮음도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높은 것은 낮게 할 수 없고, 낮은 것은 높게 할 수 없다. 성에 선악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재주에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성을 품부받는 것과 명을 받는 것은 똑같은 하나의 실상이다. 명에는 귀천이 있고 성에는 선악이 있다. 성에 선악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구주(九州) 전토(田土)의 성질은 좋고 나쁨이 고르지 않다. 그러므로 황색·적색·흑색의 구별과 상·중·하의 차등이 있다. 물과 큰물이 같지 않으므로 맑고 흐린 흐름과 동서남북으로 향하는 방향이 있다. 사람은 천지의 성을 품부받고 오상(五常)의 기를 품어, 어떤 이는 인(仁)하고 어떤 이는 의(義)하니 성술(性術)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행동하며 나아가고 날아오름에 어떤 이는 무겁고 어떤 이는 가벼우니 성식(性識)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굴빛이 어떤 이는 희고 어떤 이는 검으며, 몸의 형체가 어떤 이는 길고 어떤 이는 짧아, 늙어 죽음에 이르도록 바꿀 수 없으니 천성이 그러한 것이다. 나는 본래 맹가(孟軻)가 사람의 성이 선하다고 말한 것은 중인(中人) 이상이고, 손경이 사람의 성이 악하다고 말한 것은 중인 이하이며, 양웅(揚雄)이 사람의 성이 선악이 섞였다고 말한 것은 중인이라고 여긴다. 경(經)에 반하되 도에 합하는 것이라면 가르침으로 삼을 수 있으나, 성의 이치를 다한 것으로는 아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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