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사람의 조행에는 어짊과 어리석음이 있고, 화복을 만남에는 행(幸)과 불행(不幸)이 있다. 일을 일으킴에는 옳음과 그름이 있고, 상벌에 부딪침에는 우(偶)와 불우(不偶)가 있다. 같은 때에 병란을 만나도 숨은 자는 맞지 않는다. 같은 날에 서리를 맞아도 가려진 것은 상하지 않는다. 맞아 상한 것이 반드시 악한 것은 아니고, 숨고 가려진 것이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다. 숨고 가려진 것은 다행이고, 맞아 상한 것은 불행이다. 함께 충성을 바치고자 하여도 혹은 상을 받고 혹은 벌을 받으며, 함께 보탬이 되고자 하여도 혹은 믿음을 받고 혹은 의심을 받는다. 상을 받고 믿음을 받는 자가 반드시 참된 것은 아니고, 벌을 받고 의심을 받는 자가 반드시 거짓된 것은 아니다. 상을 받고 믿음을 받는 자는 우연히 맞은 것[偶]이고, 벌을 받고 의심을 받는 자는 맞지 않은 것[不偶]이다.
공자의 문도는 칠십여 명이었는데, 안회가 일찍 요절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다!” 하였다. 명이 짧은 것을 불행이라 일컬었으니, 명이 긴 자는 다행이고 명이 짧은 자는 불행임을 알 수 있다. 성현의 도를 따르고 인의의 업을 강론하였으니 마땅히 복과 도움을 입어야 한다. 백우(伯牛)가 병이 든 것도 또한 안회의 부류이니, 모두 불행이다. 땅강아지와 개미가 땅 위를 다니는데 사람이 발을 들어 밟고 지나간다. 발이 밟은 곳의 땅강아지와 개미는 죽고, 발이 밟지 않은 곳의 것은 온전히 살아 상하지 않는다. 불이 들풀을 태우는데 수레바퀴가 지나간 곳은 [타지 않으니], 불이 태우지 않은 풀을 세속에서 혹 기뻐하여 이름하여 ‘행초(幸草)’라 한다. 발이 밟지 않고 불이 미치지 않은 것이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다. [발이] 들리고 불이 지나감에 우연히 그러한 것이 있을 뿐이다. 이로써 논하면 옹저(癰疽)가 생기는 것도 또한 같은 실상이다. 기가 맺히고 막혀 쌓이면 모여서 옹(癰)이 되고, 터지면 저(疽)의 상처가 되어 피가 흐르고 고름이 나오니, 어찌 옹저가 생긴 곳이 몸의 좋은 혈(穴)이겠는가? 영위(營衛)의 운행이 그곳에서 통하지 못함을 만났을 뿐이다. 거미가 그물을 치면 날벌레가 지나가다 혹은 벗어나고 혹은 잡힌다. 사냥꾼이 그물을 펼치면 온갖 짐승이 떼 지어 소란하여 혹은 잡히고 혹은 놓친다. 어부가 강과 하천의 물고기를 그물질하면 혹은 남고 혹은 없어진다. 혹은 간악한 도적질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어도 알려지지 않고, 혹은 속죄금을 물 작은 죄로도 발각된다. 재앙의 기가 사람에게 가해지는 것도 이런 부류이다. 불행한 자는 [재앙을] 만나 부딪쳐 죽고 다행한 자는 벗어나 사니, 불행이란 요행을 얻지 못한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삶은 곧음[直]이니, 곧음 없이 사는 것은 요행이다.” 하였다. 그렇다면 도를 따르다가 [재앙에] 부딪친 자는 불행이 된다. 무너질 담 아래 섰다가 무너진 것에 깔리고, 언덕 위를 밟다가 무너져 떨어지는 것은, 가볍게 까닭 없이 만난 것이므로 불행이 된다. 노(魯)나라 성문이 오래 썩어 무너지려 하였는데 공자가 그곳을 지날 때 종종걸음으로 빨리 지나갔다. 좌우가 말하기를 “오래되었습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그 오래됨을 싫어한다.” 하였다. 공자는 경계하고 삼감이 매우 심하였으니, 만약 지나가다 무너짐을 만났다면 불행이라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불행은 있어도 요행은 없고, 소인은 요행은 있어도 불행은 없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군자는 평이한 데 처하여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험한 것을 행하여 요행을 바란다.” 하였다.
영행(佞幸)의 무리, 굉[유](閎[孺])·적유(籍孺)의 무리는 덕이 없고 재능이 얇으나 용색으로 사랑받아, 사랑받아서는 안 되는데 총애를 받고 친해서는 안 되는데 가까이 붙었으니, 도리의 마땅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태사공이 그들을 위해 전(傳)을 지었으니, 사악한 사람이 도에 어긋나면서 은총을 받는 것이 이와 같은 부류이므로 그 이름을 합하여 영행이라 하였다. 덕이 없이 은혜를 받고 허물이 없이 화를 만나는 것은 같은 실상이다. 함께 원기(元氣)를 받았으나 혹은 홀로 사람이 되고 혹은 금수가 되며, 함께 사람이 되었으나 혹은 귀하고 혹은 천하며 혹은 가난하고 혹은 부유하다. 부유한 자는 혹 금을 쌓고 가난한 자는 혹 밥을 빌며, 귀한 자는 제후에 봉해지고 천한 자는 노복에 이르니, 하늘이 받아 베풂에 좌우[의 편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이 받은 성(性)에 두텁고 얇음이 있는 것이다. 함께 도덕을 행하여도 화복이 고르지 않고, 함께 인의를 행하여도 이해가 같지 않다. 진문공(晉文公)은 문덕(文德)을 닦고 서언왕(徐偃王)은 인의를 행하였는데, 문공은 [그로써] 상을 받았고 언왕은 [그로써] 격파되어 멸망하였다.
노나라 사람이 아버지를 위해 원수를 갚고 편안히 걸으며 달아나지 않자 쫓는 자가 그를 놓아주었고, 우결(牛缺)은 도적에게 빼앗기고도 마음이 온화하여 두려워하지 않자 도적이 돌아와 그를 죽였다. 문덕과 인의는 같고, 달아나지 않음과 두려워하지 않음은 대등한데, 문공과 노나라 사람은 복을 얻고 언왕과 우결은 화를 얻은 것은, 문공과 노나라 사람은 다행이고 언왕과 우결은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한소후(韓昭侯)가 취하여 누워 추웠는데, 전관(典冠)이 그에게 옷을 덮어 주었다. 깨어나 그에 대해 묻고 전관이 자기를 아낌을 알았으나, 직분을 넘었다는 까닭으로 그에게 죄를 주었다. 위(衛)나라의 참승(驂乘)은 마부의 잘못을 보고 뒤에서 수레를 [멈추라고] 소리쳤는데, 위험을 구하는 의리가 있어 그 죄를 입지 않았다. 참승이 수레를 소리쳐 [멈춘 것과] 전관이 옷을 덮어 준 것은 같은 뜻이다. 옷을 덮어 준 것은 군주가 추울까 두려워해서이고, 수레를 소리쳐 [멈춘 것은] 군주가 위태로울까 두려워해서이니, 어질고 은혜로운 정이 모두 마음에서 나왔다. 그런데도 한나라에서는 죄가 되고 위나라에서는 충성이 되었으니, 참승은 우(偶)하고 전관은 불우(不偶)한 것이다.
사람의 행실뿐 아니라 사물에도 이런 것이 있다. 길이가 여러 길[仞]인 대나무와 크기가 여러 아름인 나무를 공인이 재단하여 쓰는데, 혹은 그릇을 이루어 들려 쓰이고 혹은 남은 재목이 되어 버려진다. 공인에게 사랑과 미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칼과 도끼[의 쓰임]에 우연함이 있는 것이다. 곡식을 쪄서 밥을 짓고 밥을 빚어 술을 만든다. 술이 이루어짐에 달고 씀이 맛이 다르고, 밥이 익음에 되고 무름이 조화가 다르다. 요리사와 술 빚는 이의 뜻이 다른 것이 아니라 손가락의 조절에 우연히 맞음이 있는 것이다. 밥을 지어 다른 광주리에 두고 단술을 다른 그릇에 두었는데, 벌레가 한 그릇에 떨어지면 술을 버리고 마시지 않으며, 쥐가 한 광주리를 지나가면 밥을 버리고 먹지 않는다. 온갖 풀의 부류는 모두 보탬이 있으나, 의원에게 채취되면 좋은 약이 되고, 혹은 마른 못에 버려져 불에 녹는다. 같은 금이라도 혹은 칼과 창이 되고 혹은 칼끝이 된다. 같은 나무라도 혹은 궁궐의 대들보가 되고 혹은 다리의 기둥이 된다. 같은 불이라도 혹은 기름 초를 녹이고 혹은 마른 풀을 태운다. 같은 흙이라도 혹은 전당의 기초가 되고 혹은 창과 문에 발라진다. 같은 물이라도 혹은 솥을 씻고 혹은 썩은 냄새를 씻어 낸다. 사물의 좋고 나쁨은 같으나 사람에게 쓰임을 만남에 있어 그 불행과 불우함이 오히려 애통할 만한데, 하물며 정기(精氣)를 머금은 무리이겠는가! 우순(虞舜)은 성인이니 세상에 있으면서 마땅히 온전하고 편안한 복을 입어야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완고하고 어머니는 [사나우며] 아우 상(象)은 오만하고 광포하여, 허물이 없는데 미움을 받고 악하지 않은데 죄를 얻었으니, 불행이 심하였다. 공자는 순의 다음 [가는 성인]이다. 살아서 한 자의 땅도 없었고, 두루 다니며 초빙에 응하였으나 자취가 깎이고 양식이 끊겼다. 모두 성인의 재능으로 함께 불행하고 불우하였다. 순은 그래도 요를 만나 선양을 받았으나, 공자는 결국 궐리(闕里)에서 죽었다. 성인의 재능으로도 오히려 불행하고 불우하였으니, 용렬한 사람 가운데 불행과 불우를 입은 자는 화가 반드시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