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가(墨家)의 논은 사람의 죽음에 명이 없다고 여기고, 유가(儒家)의 의론은 사람의 죽음에 명이 있다고 여긴다. 명이 있다고 말하는 자는 자하(子夏)가 “죽고 삶은 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다.”라고 한 말을 보았다. 명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역양(歷陽)의 도읍이 하룻밤 사이에 가라앉아 호수가 되었다는 것을 들었고, 진(秦)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장평(長平) 아래에서 조(趙)나라의 항복한 병졸을 구덩이에 묻어 사십만 명이 동시에 모두 죽었다는 것, 춘추 시대에 패배한 군대에서 죽은 자가 풀을 덮고 시신이 만을 헤아렸다는 것, 기근이 든 해에 굶주린 자가 길에 가득하고 온기(溫氣)의 역병으로 천 가구가 멸문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만약 반드시 명이 있다면 어찌 그 [명이] 진·제(齊)처럼 [한결같이] 같겠는가?
명이 있다고 말하는 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넓음과 백성의 많음에 비하면, 하나의 역양 도읍과 하나의 장평 구덩이에서 명이 같아 함께 죽은 것은 괴이하게 여길 것이 못 된다. 명이 마땅히 빠져 죽을 자였으므로 역양에 서로 모였고, 명이 마땅히 깔려 죽을 자였으므로 장평에 서로 쌓였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고조가 처음 일어났을 때 관상가가 풍(丰)·패(沛)의 고장에 들어가니 제후에 봉해질 사람이 많았던 것과 같으나, 반드시 늙은이·젊은이·남자·여자가 모두 귀하여 [귀한] 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뛰어난 것이 때로 나타나는 것은 왕왕 모두 그러하다. 그런데 역양의 도읍에서 남녀가 모두 빠지고 장평의 구덩이에서 노소가 함께 묻혔으니, 만(萬)을 헤아리는 가운데 반드시 명이 길어 아직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때가 쇠미함을 만나 병란이 함께 일어나 그 수명을 마치지 못하였다. 사람의 명에는 길고 짧음이 있고 때에는 성하고 쇠함이 있으니, 쇠하면 병들고 재앙을 입고 화를 당하는 것이 그 징험이다.” 하였다.
송(宋)·위(衛)·진(陳)·정(鄭)이 같은 날 함께 화재를 입었는데, 네 나라 백성 가운데에는 반드시 녹(祿)이 성하여 아직 쇠할 때가 아닌 사람이 있었을 것이나 모두 멸하였으니, 나라의 화가 그들을 덮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명(命)이 사람의 명을 이기고, 수명(壽命)이 녹명(祿命)을 이긴다. 사람에게는 오래 살고 일찍 죽는 상(相)이 있고, 또 가난하고 부유하며 귀하고 천한 법(法)이 있어, 모두 몸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수명의 길고 짧음은 모두 하늘에서 받고, 골법(骨法)의 좋고 나쁨은 모두 몸에 드러난다. 명이 요절할 운이면 비록 뛰어난 행실을 타고났더라도 끝내 오래 살 수 없고, 녹이 가난하고 천할 운이면 비록 착한 성품이 있더라도 끝내 뜻을 이룰 수 없다. 항우(項羽)가 죽으려 할 때 그 무리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패한 것은 곧 명이지 용병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사실이다. 사실이란, 항우의 용병은 고조(高祖)보다 뛰어났으나 고조가 일어난 데에는 천명(天命)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라의 명은 뭇 별에 매여 있어, 늘어선 별자리의 길흉에 따라 나라에 화복이 있고, 뭇 별이 옮겨 감에 따라 사람에게 성쇠가 있다. 사람에게 길흉이 있는 것은 해에 풍년과 흉년이 있는 것과 같다. 명에는 쇠함과 성함이 있고, 물건에는 귀함과 천함이 있다. 한 해 가운데에도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하며, 한평생 사이에도 한 번 쇠하고 한 번 성한다. 물건의 귀천은 풍년과 흉년에 달려 있지 않고, 사람의 성쇠는 어짊과 어리석음에 달려 있지 않다. 자하(子夏)가 「죽고 사는 것은 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다」라고 하고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있고, 부귀는 명에 있다」라고 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상(象)이 없고 성(性)을 주로 하니, 굳세고 강한 성을 받으면 기(氣)가 두텁고 몸이 굳세며, 굳세면 수명이 길고, 수명이 길면 요절하지 않는다. 연약한 성을 받은 자는 기가 적고 엷으며 성이 약하고 이지러지니, 약하고 이지러지면 수명이 짧고, 짧으면 일찍 죽는다. 그러므로 명에 있다고 말하니, 명이 곧 성이다. 부귀를 받는 것으로 말하면, 성을 받는 기와 같아서 뭇 별의 정기를 얻는 것이다. 뭇 별은 하늘에 있고, 하늘에는 그 상이 있다. 부귀의 상을 얻으면 부귀하고, 빈천의 상을 얻으면 빈천하므로, 하늘에 있다고 한다. 하늘에 있다는 것은 어떠한가? 하늘에는 백관(百官)이 있고 뭇 별이 있다. 하늘이 기를 베풀면 뭇 별은 정기를 펼치니, 하늘이 베푸는 기 가운데 뭇 별의 기가 들어 있다. 사람은 기를 받아 태어나고 기를 머금어 자라니, 귀함을 얻으면 귀하고 천함을 얻으면 천하다. 귀함에도 혹 품계에 높고 낮음이 있고, 부유함에도 혹 재물에 많고 적음이 있는 것은, 모두 별자리의 존비(尊卑)·대소(大小)가 준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백관이 있고 하늘에 뭇 별이 있으며, 땅에는 만민이 있으니 오제(五帝)·삼왕(三王)의 정기이다. 하늘에 왕량(王梁)·조보(造父)[별]가 있고 사람에게도 그들이 있으니, 그 기를 받았으므로 말 부리기에 능하다.
전(傳)에 이르기를 「명을 말함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명(正命), 둘째는 수명(隨命), 셋째는 조명(遭命)이다」라고 하였다. 정명은 본래 타고난 것에서 저절로 길함을 얻는 것을 말한다. 성이 그러하고 골상이 좋으므로 행실을 닦아 복을 구하지 않아도 길함이 저절로 이르니, 그러므로 정명이라 한다. 수명은 힘써 행실을 닦으면 길한 복이 이르고, 정을 멋대로 하고 욕심을 부리면 흉한 화가 이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수명이라 한다. 조명은 선을 행하였는데 악을 얻는 것으로, 바라던 바가 아닌데 밖에서 만나 흉한 화를 얻는 것이니, 그러므로 조명이라 한다. 무릇 사람이 명을 받는 것은 부모가 기를 베풀 때에 이미 길흉을 얻는다. 무릇 성과 명은 다르니, 혹 성은 착한데 명은 흉하고, 혹 성은 악한데 명은 길하다.
행실의 선악은 성이고, 화복길흉은 명이다. 혹 선을 행하였는데 화를 얻으니 이는 성은 착하나 명이 흉한 것이고, 혹 악을 행하였는데 복을 얻으니 이는 성은 악하나 명이 길한 것이다. 성에는 본래 선악이 있고, 명에는 본래 길흉이 있다. 가령 명이 길한 사람은 비록 선을 행하지 않아도 반드시 복이 없는 것은 아니고, 흉한 명의 사람은 비록 힘써 행실을 닦아도 반드시 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구하는 데에는 도가 있고, 얻는 데에는 명이 있다」라고 하였다. 성이 착해야 구할 수 있고, 명이 좋아야 얻을 수 있다. 성은 착하나 명이 흉하면 구해도 얻을 수 없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화가 따라 이른다[는 것이 수명의 설이다]. 그런데 도척(盜蹠)과 장교(莊蹻)는 천하를 휘젓고 다니며 무리 수천을 모아 남의 물건을 빼앗고 사람의 몸을 베었으니 무도함이 심하여 마땅히 화를 만나야 했으나, 도리어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이와 같다면 수명의 설은 어디에서 증험되겠는가? 조명이란 안으로 선을 행하였는데 밖에서 흉을 만나는 것이다. 안연(顏淵)·백우(伯牛)의 무리 같은 이는 어찌하여 흉을 만났는가? 안연과 백우는 선을 행한 자들이니 마땅히 수명을 얻어 복과 도움이 따라 이르러야 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흉을 만났는가? 안연은 배움에 지쳐 재주 때문에 스스로를 죽였고, 백우는 한가로이 지내다가 몹쓸 병을 만났다. 굴평(屈平)·오원(伍員)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충성을 다해 윗사람을 보필하고 왕의 신하 된 절개를 다하였으나, 초(楚)는 그 몸을 추방하였고 오(吳)는 그 시신을 삶았다. 선을 행하였으니 마땅히 수명의 복을 얻어야 하는데 도리어 조명의 화에 부딪힌 것은 어째서인가? 수명을 말하면 조명이 없고, 조명을 말하면 수명이 없으니, 유자(儒者)의 삼명(三命)의 설은 결국 어디에 정해지는가? 또 명은 처음 태어날 때에 있어 골상의 겉에 드러난다. 지금 행실에 따라 이른다고 말하면 이는 명이 끝에 있고 근본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부귀빈천은 모두 처음 받을 때에 있지, 자란 뒤에 행실에 따라 이르는 것이 아니다. 정명인 자는 백 세에 이르러 죽고, 수명인 자는 오십 세에 죽으며, 조명인 자는 처음 기를 받을 때에 흉악함을 만난 것이니, 임신했을 때 나쁜 것을 만나거나, 혹 천둥과 비의 변고를 만나 자라서 요절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삼명이라 한다.
또한 세 가지 성(性)이 있으니, 정(正)이 있고 수(隨)가 있고 조(遭)가 있다. 정이란 오상(五常)의 성을 받은 것이고, 수란 부모의 성을 따른 것이며, 조란 나쁜 물상(物象)을 만난 까닭이다. 그러므로 임부가 토끼를 먹으면 아이가 언청이로 태어난다. 「월령(月令)」에 이르기를 「이달에 천둥이 소리를 내려 한다」라고 하였다. 그 몸가짐을 삼가지 않는 자가 있으면 낳은 아이가 온전하지 못하여 반드시 큰 흉이 있으니, 벙어리·귀머거리·절름발이·소경이 된다. 기가 태를 상하게 하는 것을 만났으므로 미치고 패악한 성을 받는다. 양설사아(羊舌似我)는 처음 태어났을 때 소리가 승냥이와 이리 같았는데, 자라서 성이 악하여 화를 입고 죽었다. 어머니 몸에 있을 때 이 성을 받은 것이니, 단주(丹朱)·상균(商均)의 부류가 이것이다. 성과 명은 근본에 있으므로 『예(禮)』에 태교(胎敎)의 법이 있으니, 아이가 몸에 있을 때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고, 자른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으며, 바른 색이 아니면 눈으로 보지 않고, 바른 소리가 아니면 귀로 듣지 않는다.
자라서는 어진 스승과 좋은 사부를 두어 군신·부자의 도를 가르치니, 어질고 어질지 못함이 이때에 달려 있다. 기를 받을 때 어머니가 삼가지 않아 마음이 망령되고 생각이 삿되면, 아이가 자라서 미치고 패악하여 착하지 않으며 형체가 추악하다. 소녀(素女)가 황제(黃帝)에게 오녀(五女)의 법을 아뢴 것은, 부모의 몸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 자녀의 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명(命)이 있고, 녹(祿)이 있고, 조우(遭遇)가 있고, 행우(幸偶)가 있다. 명이란 빈부귀천이고, 녹이란 성쇠흥폐이다. 명이 부귀할 운에 성할 녹을 만나면 늘 편안하여 위태롭지 않고, 명이 빈천할 운에 쇠할 녹을 만나면 재앙이 이르러 늘 괴롭고 즐겁지 않다. 조(遭)란 비상한 변고를 만나는 것이니, 성탕(成湯)이 하대(夏臺)에 갇히고 문왕(文王)이 유리(牖里)에서 곤액을 당한 것과 같다.
성스럽고 밝은 덕을 지니고서도 갇히고 곤액을 당하는 변고가 있었으니 조(遭)라 이를 만하다. 변고가 비록 매우 컸으나 명이 좋고 녹이 성하여 변고가 해가 되지 못하였으므로 조봉(遭逢)의 화라 일컫는다. 안자(晏子)가 만난 일은 크다고 이를 만하다. 곧은 병기가 가슴을 겨누고 흰 칼날이 목에 닿아 죽음의 땅을 밟고 칼과 창의 끝을 마주하였으나, 죽음을 붙잡고서도 살아 돌아왔다. 명이 좋고 녹이 성하면 조봉의 화가 해칠 수 없다. 역양(歷陽)의 도성과 장평(長平)의 구덩이에도 그 가운데 반드시 명이 좋고 녹이 성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나, 하룻밤에 함께 묻혀 죽었다. 조봉의 화가 크면 명이 좋고 녹이 성해도 물리칠 수 없다. 비유하자면 물과 불이 서로 번갈아 이기는 것과 같으니, 물이 성하면 불을 이기고 불이 성하면 물을 이긴다. [우(遇)란] 그 군주를 만나 쓰이는 것이다. 비록 좋은 명과 성한 녹이 있어도 자기를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하면 효험을 얻지 못한다. 행(幸)이란 만나 부딪치는 바에 선악을 얻는 것을 말한다. 죄를 짓고도 벗어나는 것은 행이다. 죄가 없는데 붙잡히는 것은 불행이다. 붙잡힌 지 오래지 않아 명을 받아 풀려나는 것은, 명이 좋고 녹이 성하여 뜻밖의 재앙이 상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우(偶)(也)[란] 군주를 섬기는 것을 말한다. 도로써 군주를 섬기매 군주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마침내 그 몸을 쓰는 것이 우이다. 행실이 군주와 어긋나 물러나 멀어지는 것은 불우(不偶)이다. 물러나 멀어진 지 오래지 않아 상관이 불러 쓰는 것은, 명이 좋고 녹이 성하여 불우의 해가 머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우와 행우는 혹 명·녹과 함께하기도 하고, 혹 명과 떨어지기도 한다. 조우가 행우하여 마침내 온전히 이루고, 조우가 불행·불우하여 마침내 패하고 상하는 것은 명과 함께하는 것이다. 중도에 이루지 못하고 선이 바뀌어 악이 되는 것, 이와 같은 것은 명·녹과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있으면서 길흉의 성명이 있고 성쇠의 화복이 있으며, 거기에 조우·행우의 만남이 겹치니, 삶과 죽음을 따라 그 선악의 행실을 마치고 가슴속의 뜻을 이루는 자는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