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형(論衡) 9장 吉驗篇第九 · 원문+번역원문+번역원문번역독음인쇄 창의 대상(프린터)에서 「PDF로 저장」을 고르세요. 휴대폰은 공유 → 인쇄 → PDF.

논형 論衡

王充
9장 吉驗篇第九 · 원문+번역
원문: 위키문헌 등 공개 판본(교감본 아님) · 번역: AI 초벌 직역(검수 중)

吉驗篇第九

凡범人인稟품貴귀命명於어天천,必필有유吉길驗험見견於어地지。見견於어地지,故고有유天천命명也야。驗험見견非비一일,或혹以이人인物물,或혹以이禎정祥상,或혹以이光광氣기。傳전言언黃황帝제妊임二이十십月월而이生생,生생而이神신靈령,弱약而이能능言언。長장大대率솔諸제侯후,諸제侯후歸귀之지。教교熊웅、羆비戰전,以이伐벌炎염帝제,炎염帝제敗패績적。性성與여人인異이,故고在재母모之지身신留류多다十십月월;命명當당為위帝제,故고能능教교物물,物물為위之지使사。堯요體체就취之지如여日일,望망之지若약雲운。洪홍水수滔도天천,蛇사龍룡為위害해,堯요使사禹우治치水수,驅구蛇사龍룡,水수治치東동流류,蛇사龍룡潛잠處처。有유殊수奇기之지骨골,故고有유詭궤異이之지驗험;有유神신靈령之지命명,故고有유驗험物물之지效효;天천命명當당貴귀,故고從종唐당侯후入입嗣사帝제后후之지位위。

무릇 사람이 하늘에서 귀한 명을 받으면 반드시 땅에 길한 증험이 나타난다. 땅에 나타나므로 천명이 있음을 [안다]. 증험이 나타나는 것은 한 가지가 아니니, 혹은 사람과 사물로, 혹은 상서로운 징조로, 혹은 빛과 기운으로 [나타난다]. 전(傳)에 이르기를, 황제(黃帝)는 잉태된 지 스무 달 만에 태어났고, 태어나면서 신령하여 어려서도 말을 할 수 있었다. 자라서는 제후를 거느리니 제후가 그에게 귀의하였다. 곰과 큰곰을 가르쳐 싸우게 하여 염제(炎帝)를 치니 염제가 패하였다. 성이 남과 달랐으므로 어머니 몸에 열 달을 더 머물렀고, 명이 제왕이 될 것이었으므로 짐승을 가르칠 수 있어 짐승이 그를 위해 부림을 당하였다. 요(堯)의 몸은 가까이 가면 해와 같고 바라보면 구름과 같았다. 홍수가 하늘에 넘치고 뱀과 용이 해를 끼치자, 요가 우(禹)에게 물을 다스리게 하니, 뱀과 용을 몰아내어 물이 다스려져 동쪽으로 흐르고 뱀과 용은 숨어 살았다. 특별하고 기이한 골상이 있었으므로 기이한 증험이 있었고, 신령한 명이 있었으므로 사물을 증험하는 효과가 있었으며, 천명이 귀할 것이었으므로 당후(唐侯)로부터 들어가 제왕의 자리를 이었다.

舜순未미逢봉堯요,鰥환在재側측陋루。瞽고瞍수與여象상,謀모欲욕殺살之지:使사之지完완廩름,火화燔번其기下하;令영之지浚준井정,土토掩엄其기上상。舜순得득下하廩름,不불被피火화災재;穿천井정旁방出출,不불觸촉土토害해。堯요聞문征정用용,試시之지於어職직。官관治치職직修수,事사無무廢폐亂란;使사入입大대麓록之지野야,虎호狼랑不불搏박,蝮복蛇사不불噬서;逢봉烈렬風풍疾질雨우,行행不불迷미惑혹。夫부人인欲욕殺살之지,不불能능害해之지;毒독螫석之지野야,禽금蟲충不불能능傷상,卒졸受수帝제命명,踐천天천子자祚조。

순(舜)이 요를 만나기 전에는 홀아비로 미천한 곳에 있었다. 고수(瞽瞍)와 상(象)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여, 곳간을 고치게 하고는 그 아래에 불을 질렀고, 우물을 치게 하고는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순은 곳간에서 내려와 화재를 입지 않았고, 우물 옆을 뚫고 나와 흙의 해를 입지 않았다. 요가 듣고 불러 쓰며 직무로 시험하였다. 관직이 다스려지고 직무가 닦여 일에 폐하거나 어지러운 것이 없었으며, 큰 산기슭의 들에 들어가게 하였으나 범과 이리가 덮치지 않고 살무사와 뱀이 물지 않았으며, 사나운 바람과 세찬 비를 만나도 가는 길에 헤매지 않았다. 무릇 사람이 죽이려 해도 해칠 수 없었고, 독충이 쏘는 들에서도 짐승과 벌레가 상하게 할 수 없었으며, 마침내 제왕의 명을 받아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后후稷직之지〔母모〕,履이大대人인跡적,或혹言언衣의帝제嚳곡之지服복,坐좌息식帝제嚳곡之지處처,妊임身신;怪괴而이棄기之지隘애巷항,牛우馬마不불敢감踐천之지,置치之지冰빙上상,鳥조以이翼익覆복之지,慶경集집其기身신。母모知지其기神신怪괴,乃내收수養양之지。長장大대佐좌堯요,位위至지司사馬마。烏오孫손王왕號호昆곤莫막,匈흉奴노攻공殺살其기父부,而이昆곤莫막生생,棄기於어野야,烏오銜함肉육往왕食식之지。單단于우怪괴之지,以이為위神신而이收수長장。及급壯장,使사兵병,數수有유功공。單단于우乃내復복以이其기父부之지民민予여昆곤莫막,命명令령長장守수於어西서城성。

후직(后稷)의 (時)[어머니]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았는데, 혹은 제곡(帝嚳)의 옷을 입고 제곡이 쉬던 곳에 앉아 쉬었다고도 하며, [그리하여] 잉태하였다. 괴이하게 여겨 좁은 골목에 버렸으나 소와 말이 감히 밟지 않았고, 얼음 위에 두었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어 경사가 그 몸에 모였다. 어머니가 그 신이함을 알고 거두어 길렀다. 자라서 요를 보좌하여 지위가 사마(司馬)에 이르렀다. 오손왕(烏孫王)은 호가 곤막(昆莫)인데, 흉노(匈奴)가 그 아비를 쳐서 죽였을 때 곤막이 태어나 들에 버려졌으나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가서 먹였다. 선우(單于)가 괴이하게 여겨 신이하다 하여 거두어 길렀다. 장성하자 병사를 부리게 하니 여러 번 공이 있었다. 선우가 이에 그 아비의 백성을 다시 곤막에게 주고, 서쪽 성을 길이 지키게 명하였다.

夫부后후稷직不불當당棄기,故고牛우馬마不불踐천,鳥조以이羽우翼익覆복愛애其기身신。昆곤莫막不불當당死사,故고烏오銜함肉육就취而이食식之지。

무릇 후직은 버려져서는 안 될 [명]이었으므로 소와 말이 밟지 않고 새가 깃과 날개로 그 몸을 덮어 아껴 주었다. 곤막은 죽어서는 안 될 [명]이었으므로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다가가 먹였다.

北북夷이橐탁離리國국王왕侍시婢비有유娠신,王왕欲욕殺살之지。婢비對대曰왈:「有유氣기大대如여雞계子자,從종天천而이下하,我아故고有유娠신」。後후產산子자,捐연於어豬저溷혼中중,豬저以이口구氣기噓허之지,不불死사;復복徙사置치馬마欄란中중,欲욕使사馬마藉자殺살之지,馬마復복以이口구氣기噓허之지,不불死사。王왕疑의以이為위天천子자,令영其기母모收수取취,奴노畜축之지,名명東동明명,令영牧목牛우馬마。東동明명善선射사,王왕恐공奪탈其기國국也야,欲욕殺살之지。東동明명走주,南남至지掩엄淲표水수

북이(北夷) 탁리국(橐離國) 왕의 시녀가 임신하자 왕이 그를 죽이려 하였다. 시녀가 대답하기를 「달걀만 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제가 임신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뒤에 아들을 낳자 돼지우리에 버렸는데, 돼지가 입김으로 불어 주어 죽지 않았다. 다시 마구간에 옮겨 두어 말이 밟아 죽이게 하려 하였으나, 말이 또 입김으로 불어 주어 죽지 않았다. 왕은 천자[하늘의 아들]가 아닌가 의심하여 그 어머니에게 거두어 노비로 기르게 하고,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여 소와 말을 치게 하였다. 동명이 활을 잘 쏘자 왕은 그가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동명이 달아나 남쪽으로 엄호수(掩淲水)에 이르렀다

以이弓궁擊격水수,魚어鱉별浮부為위橋교,東동明명得득渡도。魚어鱉별解해散산,追추兵병不불得득渡도。因인都도王왕夫부餘여,故고北북夷이有유夫부餘여國국焉언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가 되어 동명이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흩어지자 추격병은 건널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부여(夫餘)에 도읍하여 왕이 되었으므로 북이에 부여국이 있게 되었다

。東동明명之지母모初초妊임時시,見견氣기從종天천下하。及급生생,棄기之지,豬저馬마以이氣기吁우之지而이生생之지。長장大대,王왕欲욕殺살之지,以이弓궁擊격水수,魚어鱉별為위橋교。天천命명不불當당死사,故고有유豬저馬마之지救구;命명當당都도王왕夫부餘여,故고有유魚어鱉별為위橋교之지助조也야。

. 동명의 어머니가 처음 잉태할 때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태어나자 버렸는데, 돼지와 말이 입김으로 불어 주어 살렸다. 자라자 왕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었다. 천명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이었으므로 돼지와 말의 구원이 있었고, 명이 부여에 도읍하여 왕이 될 것이었으므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는 도움이 있었다.

伊이尹윤且차生생之지時시,其기母모夢몽人인謂위已이曰왈:「臼구出출水수,疾질東동走주。」母모顧고明명旦단視시臼구出출水수,即즉東동走주十십里리,顧고其기鄉향皆개為위水수矣의。伊이尹윤命명不불當당沒몰,故고其기母모感감夢몽而이走주。推추此차以이論론,歷역陽양之지都도,其기策책命명若약伊이尹윤之지類류,必필有유先선時시感감動동在재他타地지之지效효。齊제襄양公공之지難난,桓환公공為위公공子자,與여子자糾규爭쟁立립。管관仲중輔보子자糾규,鮑포叔숙佐좌桓환公공。管관仲중與여桓환公공爭쟁,引인弓궁射사之지,中중其기帶대鉤구。夫부人인身신長장七칠尺척,帶대約약其기要요,鉤구挂괘於어帶대,在재身신所소掩엄不불過과一일寸촌之지內내,既기微미小소難난中중,又우滑활澤택靡미,鋒봉刃인中중鉤구者자,莫막不불蹉차跌질。管관仲중射사之지,正정中중其기鉤구中중,矢시觸촉因인落락,不불跌질中중旁방肉육。命명當당富부貴귀,有유神신靈령之지助조,故고有유射사鉤구不불中중之지驗험。楚초共공王왕有유五오子자:子자招초、子자圉어、子자干간、子자晰석、棄기疾질。五오人인皆개有유寵총,共공王왕無무適적立립,乃내望망祭제山산川천,請청神신決결之지。乃내與여巴파姬희埋매璧벽於어太태室실之지庭정,令영五오子자齊제而이入입拜배。康강王왕跨과之지;子자圉어肘주加가焉언;子자干간、子자晰석皆개遠원之지;棄기疾질弱약,抱포而이入입,再재拜배皆개壓압紐뉴。故고共공王왕死사,招초為위康강王왕,至지子자失실之지;圉어為위靈령王왕,及급身신而이弒시;子자干간為위王왕,十십有유餘여日일;子자晰석不불立립,又우懼구誅주死사,皆개絕절無무後후。棄기疾질後후立립,竟경續속楚초祀사,如여其기神신符부。其기王왕日일之지長장短단,與여拜배去거璧벽遠원近근相상應응也야。夫부璧벽在재地지中중,五오子자不불知지,相상隨수入입拜배,遠원近근不불同동,壓압紐뉴若약神신將장教교跽기之지矣의。晉진屠도岸안賈가作작難난,誅주趙조盾순之지子자朔삭死사,其기妻처有유遺유腹복子자。

이윤(伊尹)이 태어나려 할 때, 그 어머니가 꿈에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절구에서 물이 나오면 빨리 동쪽으로 달아나라」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이튿날 아침 돌아보니 절구에서 물이 나오므로 곧 동쪽으로 십 리를 달아났는데, 돌아보니 그 고을이 모두 물에 잠겨 있었다. 이윤은 명이 물에 빠져 죽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그 어머니가 꿈에 감응하여 달아난 것이다. 이를 미루어 논하면, 역양(歷陽)의 도성에서 그 명이 이윤 같은 부류인 자는 반드시 미리 감동하여 다른 곳에 가 있는 효험이 있었을 것이다. 제양공(齊襄公)의 난리 때, 환공(桓公)은 공자(公子)로서 자규(子糾)와 즉위를 다투었다. 관중(管仲)은 자규를 보필하고, 포숙(鮑叔)은 환공을 보좌하였다. 관중이 환공과 다투며 활을 당겨 그를 쏘았는데, 그 허리띠 고리에 맞았다. 무릇 사람의 키는 일곱 자이고 허리띠는 그 허리를 묶으며 고리는 띠에 걸려 있어, 몸에서 가리는 곳이 한 치 안에 지나지 않으니, 이미 작아서 맞히기 어렵고 또 매끄럽고 반들거려서, 칼날이나 화살촉이 고리에 맞으면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 없다. 관중이 쏘았을 때 바로 그 고리 한가운데를 맞혀 화살이 부딪쳐 떨어지고 미끄러져 옆의 살에 맞지 않았다. 명이 부귀할 것이었으므로 신령의 도움이 있어, 고리를 쏘아 [몸에] 맞지 않은 증험이 있었다. 초공왕(楚共王)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으니, 자초(子招)·자어(子圉)·자간(子干)·자석(子晰)·기질(棄疾)이다. 다섯이 모두 총애를 받아 공왕은 세울 적자를 정하지 못하고, 이에 산천에 망제(望祭)를 지내 신에게 결정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파희(巴姬)와 함께 태실(太室)의 뜰에 옥벽을 묻고, 다섯 아들에게 재계하고 들어와 절하게 하였다. 강왕(康王)은 그것을 넘었고, 자어는 팔꿈치를 그 위에 대었으며, 자간과 자석은 모두 멀리 떨어졌고, 기질은 어려서 안겨 들어왔는데 두 번 절할 때 모두 [옥벽의] 끈을 눌렀다. 그러므로 공왕이 죽자 초는 강왕이 되었으나 아들 대에 이르러 [나라를] 잃었고, 어는 영왕(靈王)이 되었으나 자기 대에 시해되었으며, 자간은 왕이 되었으나 십여 일이었고, 자석은 서지 못하고 또 주살될까 두려워 죽었으니, 모두 끊어져 후사가 없었다. 기질이 뒤에 서서 마침내 초의 제사를 이었으니, 그 신의 부절과 같았다. 그들이 왕 노릇 한 날의 길고 짧음이 절한 곳과 옥벽의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상응하였다. 무릇 옥벽은 땅속에 있어 다섯 아들은 알지 못하였는데, 서로 이어 들어가 절하매 멀고 가까움이 같지 않았고, 끈을 누른 것은 마치 신이 무릎 꿇는 곳을 가르쳐 준 듯하였다. 진(晉)의 도안고(屠岸賈)가 난을 일으켜 조순(趙盾)의 아들 삭(朔)을 죽였는데, 그 아내에게 유복자가 있었다.

及급岸안賈가聞문之지,索색於어宮궁,母모置치兒아於어褲고中중,祝축曰왈:「趙조氏씨宗종滅멸乎호,若약當당啼제。即즉不불滅멸,若약無무聲성。」及급索색之지而이終종不불啼제,遂수脫탈得득活활。程정嬰영〔齎재〕負부之지,匿익於어山산中중。至지景경公공時시,韓한厥궐言언於어景경公공。景경公공乃내與여韓한厥궐共공立립趙조孤고,續속趙조氏씨祀사,是시為위文문子자。當당趙조孤고之지無무聲성,若약有유掩엄其기口구者자矣의。由유此차言언之지,趙조文문子자立립,命명也야。

도안가(屠岸賈)가 이를 듣고 궁중을 수색하자, 어머니가 아이를 바지 속에 넣고 빌기를 「조씨(趙氏)의 종족이 멸망할 것이라면 너는 울어라.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면 너는 소리를 내지 마라.」라고 하였다. 수색할 때에 [아이가] 끝내 울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벗어나 살 수 있었다. 정영(程嬰)이 [아이를] 싸서 [齎] 업고 산속에 숨었다. 경공(景公) 때에 이르러 한궐(韓厥)이 경공에게 말하였다. 경공이 이에 한궐과 함께 조씨의 고아를 세워 조씨의 제사를 잇게 하니, 이가 문자(文子)이다. 조씨의 고아가 소리를 내지 않았을 때에는 마치 누군가 그 입을 막은 것 같았다. 이로써 말하면 조문자(趙文子)가 선 것은 명(命)이다.

高고皇황帝제母모曰왈劉류媼온,嘗상息식大대澤택之지陂피,夢몽與여神신遇우。是시時시,雷뇌電전晦회冥명,蛟교龍룡在재上상。及급生생而이有유美미。性성好호用용酒주,嘗상從종王왕媼온、武무負부貰세酒주,飲음醉취,止지臥와,媼온、負부見견其기身신常상有유神신怪괴。每매留류飲음醉취,酒주售수數수倍배。後후行행澤택中중,手수嶄참大대蛇사,一일嫗구當당道도而이哭곡,云운:「赤적帝제子자殺살吾오子자。」此차驗험既기著저聞문矣의。秦진始시皇황帝제常상曰왈:「東동南남有유天천子자氣기」。於어是시東동游유以이厭염當당之지。高고祖조之지〔起기〕也야,與여呂려后후隱은於어芒망、山산澤택間간。呂여后후與여人인求구之지,見견其기上상常상有유氣기直직起기,往왕求구輒첩得득其기處처。後후與여項항羽우約약:先선入입秦진關관王왕之지。高고祖조先선至지,項항羽우怨원恨한,范범增증曰왈:「吾오令령人인望망其기氣기,氣기皆개為위龍룡,成성五오采채,此차皆개天천子자之지氣기也야。急급擊격之지」。高고祖조往왕謝사項항羽우。羽우與여亞아父부謀모殺살高고祖조,使사項항莊장拔발劍검起기舞무。項항伯백知지之지,因인與여項항莊장俱구起기。每매劍검加가高고祖조之지上상,項항伯백輒첩以이身신覆복高고祖조之지身신,劍검遂수不불得득下하,殺살勢세不불得득成성。會회有유張장良량、樊번噲쾌之지救구,卒졸得득免면脫탈,遂수王왕天천下하。初초妊임身신有유蛟교龍룡之지神신;既기生생,酒주舍사見견雲운氣기之지怪괴;夜야行행斬참蛇사,蛇사嫗구悲비哭곡;始시皇황、呂여后후,望망見견光광氣기;項항羽우謀모殺살,項항伯백為위蔽폐,謀모遂수不불成성,遭조得득良량、噲쾌,蓋개富부貴귀之지驗험,氣기見견而이物물應응、人인助조輔보援원也야。竇두太태后후弟제名명曰왈廣광國국,年연四사五오歲세,家가貧빈,為위人인所소掠략賣매。其기家가不불知지其기所소在재,傳전賣매十십餘여家가。至지宜의陽양,為위其기主주人인入입山산作작炭탄。暮모寒한,臥와炭탄下하,百백餘여人인炭탄崩붕盡진壓압死사,廣광國국獨독得득脫탈。自자卜복數수日일當당為위侯후,從종其기家가之지長장安안,聞문竇두皇황后후新신立립,家가在재清청河하觀관津진,乃내上상書서自자陳진。竇두〔皇황〕后후言언於어〔文문〕帝제,召소見견問문其기故고,果과是시,乃내厚후賜사之지。〔景경〕帝제立립,拜배廣광國국為위章장武무侯후。夫부積적炭탄崩붕,百백餘여人인皆개死사,廣광國국獨독脫탈,命명當당富부貴귀,非비徒도得득活활,又우封봉為위侯후。虞우子자大대,陳진留류東동〔昏혼〕人인也야,其기生생時시以이夜야,適적免면母모身신,母모見견其기上상若약一일匹필練련狀상,經경上상天천。明명以이問문人인,人인皆개曰왈:「吉길,貴귀。」氣기與여天천通통,長장大대仕사宦환,位위至지司사徒도公공。廣광文문伯백河하東동蒲포阪판人인也야,其기生생亦역以이夜야半반時시,適적生생,有유人인從종門문呼호其기父부名명。

고황제(高皇帝)의 어머니는 유온(劉媼)이라 하는데, 일찍이 큰 못의 둑에서 쉬다가 꿈에 신(神)과 만났다. 이때 천둥과 번개가 치고 어두컴컴하였는데, 교룡(蛟龍)이 그 위에 있었다. 태어나서는 [용모가] 아름다웠다. 성품이 술을 좋아하여 일찍이 왕온(王媼)과 무부(武負)에게서 술을 외상으로 사서 마시고 취하여 누워 있으면, 왕온과 무부는 그의 몸에서 늘 신괴(神怪)한 것을 보았다. [고조가] 머물러 마시고 취할 때마다 술이 몇 배나 팔렸다. 뒤에 못 가운데를 가다가 손으로 큰 뱀을 베었는데, 한 노파가 길을 막고 울며 「적제(赤帝)의 아들이 내 아들을 죽였다.」라고 하였다. 이 징험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진시황제(秦始皇帝)가 늘 「동남쪽에 천자(天子)의 기운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동쪽으로 순행하여 그것을 눌러 막고자 하였다. 고조가 일어났을[起] 때에 여후(呂后)와 함께 망산(芒山)·탕산(碭山)의 산과 못 사이에 숨었다. 여후가 사람들과 함께 그를 찾을 때에 그 위에 늘 기운이 곧게 솟아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가서 찾으면 곧 그 있는 곳을 찾았다. 뒤에 항우(項羽)와 약속하기를, 먼저 진(秦)의 관(關)에 들어가는 자가 왕이 되기로 하였다. 고조가 먼저 이르자 항우가 원망하고 한스러워하였는데, 범증(范增)이 말하기를 「내가 사람을 시켜 그의 기운을 바라보게 하니, 기운이 모두 용(龍)이 되어 오색을 이루었으니, 이는 모두 천자의 기운이다. 급히 치십시오」라고 하였다. 고조가 가서 항우에게 사죄하였다. 항우는 아보(亞父)와 고조를 죽일 것을 꾀하여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칼을 뽑아 일어나 춤추게 하였다. 항백(項伯)이 이를 알고 항장과 함께 일어났다. 칼이 고조 위로 향할 때마다 항백이 곧 몸으로 고조의 몸을 덮으니, 칼이 끝내 내려가지 못하고 죽이려는 형세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마침 장량(張良)과 번쾌(樊噲)의 구원이 있어 마침내 벗어날 수 있었고, 드디어 천하의 왕이 되었다. 처음 잉태할 때에 교룡의 신이 있었고, 태어난 뒤에는 술집에서 구름 기운의 괴이함을 보았으며, 밤길에 뱀을 베자 뱀의 노파가 슬피 울었고, 시황과 여후가 빛나는 기운을 바라보았으며, 항우가 죽이려고 꾀하자 항백이 가려 주어 꾀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장량과 번쾌를 만났으니, 이는 대개 부귀의 징험으로서 기운이 드러나자 사물이 응하고 사람이 도와 구원한 것이다. 두태후(竇太后)의 아우는 이름이 광국(廣國)인데, 나이 네다섯 살에 집이 가난하여 남에게 약탈되어 팔렸다. 그 집에서는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고, [그는] 열 몇 집에 전전하여 팔렸다. 의양(宜陽)에 이르러 그 주인을 위하여 산에 들어가 숯을 구웠다. 저녁에 추워서 숯 [가마] 아래에 누웠는데, 숯이 무너져 백여 명이 모두 깔려 죽었으나 광국만 홀로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 점을 쳐 보니 며칠 안에 후(侯)가 될 것이라 하였다. 그 집 [주인]을 따라 장안(長安)에 갔다가 두황후(竇皇后)가 새로 섰는데 집이 청하(淸河) 관진(觀津)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에 글을 올려 스스로 사정을 아뢰었다. 두황후[皇]가 문제(文帝)[文]에게 말하니, 불러 보고 그 연고를 물었는데 과연 그러하였으므로 이에 후하게 하사하였다. 경제(景帝)[景]가 즉위하자 광국을 장무후(章武侯)로 삼았다. 무릇 쌓은 숯이 무너져 백여 명이 모두 죽었는데 광국만 홀로 벗어났으니, 명(命)이 마땅히 부귀할 것이었으므로 한갓 살아났을 뿐 아니라 또 후로 봉해진 것이다. 우자대(虞子大)는 진류(陳留) 동혼(東昏)[昏] 사람인데, 그가 태어날 때가 밤이었다. 막 어머니 몸에서 벗어나자 어머니가 그 위에 한 필의 비단 같은 모양이 있어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날이 밝아 사람들에게 물으니, 사람들이 모두 「길(吉)하고 귀(貴)하다.」라고 하였다. 기운이 하늘과 통하였으므로 자라서 벼슬하여 지위가 사도공(司徒公)에 이르렀다. 광문백(廣文伯)은 하동(河東) 포판(蒲阪) 사람인데, 그 역시 한밤중에 태어났다. 막 태어나자 어떤 사람이 문에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父부出출應응之지,不불見견人인,有유一일木목杖장植식其기門문側측,好호善선異이於어眾중,其기父부持지杖장入입門문以이示시人인,人인占점曰왈:「吉길」。文문伯백長장大대學학宦환,位위至지廣광漢한太태守수。文문伯백當당富부貴귀,故고父부得득賜사杖장。其기占점者자若약曰왈:「杖장當당子자力력矣의。」光광武무帝제建건平평元원年년十십二이月월甲갑子자生생於어濟제陽양宮궁後후殿전第제二이內내中중,皇황考고為위濟제陽양令령,時시夜야無무火화,室실內내自자明명。皇황考고怪괴之지,即즉召소功공曹조吏리充충蘭란,使사出출問문卜복工공。蘭난與여馬마下하卒졸蘇소永영俱구之지卜복王왕長장孫손所소。長장孫손卜복,謂위永영、蘭난曰왈:「此차吉길事사也야。毋무多다言언。」是시歲세,有유禾화生생景경天천備비火화中중,三삼本본一일莖경九구穗수,長장於어禾화一일二이尺척,蓋개嘉가禾화也야。元원帝제之지初초,有유鳳봉凰황下하濟제陽양宮궁,故고今금濟제陽양宮궁有유鳳봉凰황廬려。始시與여李리父부等등俱구起기,到도柴시界계中중,遇우賊적兵병,惶황惑혹走주濟제陽양舊구廬려。比비到도,見견光광若약火화正정赤적,在재舊구廬려道도南남,光광耀요憧동憧동上상屬속天천,有유頃경不불見견。王왕莽망時시,謁알者자蘇소伯백阿아能능望망氣기,使사過과〔舂용〕陵릉,城성郭곽鬱울鬱울蔥총蔥총。及급光광武무到도河하北북,與여伯백阿아見견,問문曰왈:「卿경前전過과〔舂용〕陵릉,何하用용知지其기氣기佳가也야?」伯백阿아對대曰왈:「見견其기鬱울鬱울蔥총蔥총耳이。」蓋개天천命명當당興흥,聖성王왕當당出출,前전後후氣기驗험,照조察찰明명著저。繼계體체守수文문,因인據거前전基기,稟품天천光광氣기,驗험不불足족言언。創창業업龍룡興흥,由유微미賤천起기於어顛전沛패;若약高고祖조、光광武무者자,曷갈嘗상無무天천人인神신怪괴光광顯현之지驗험乎호!

아버지가 나가서 응하였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무 지팡이 하나가 그 문 옆에 꽂혀 있었는데, 좋기가 뭇 [지팡이와] 달랐다. 그 아버지가 지팡이를 가지고 문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보이니, 사람들이 점쳐서 「길(吉)하다」라고 하였다. 문백은 자라서 배우고 벼슬하여 지위가 광한태수(廣漢太守)에 이르렀다. 문백이 마땅히 부귀할 것이었으므로 아버지가 지팡이를 받은 것이다. 그 점친 자의 말은 「지팡이는 아들의 힘에 해당한다.」라는 것과 같다. 광무제(光武帝)는 건평(建平) 원년 12월 갑자(甲子)일에 제양궁(濟陽宮) 후전(後殿) 제2 내실 안에서 태어났다. 황고(皇考)가 제양령(濟陽令)이었는데, 그때 밤에 불이 없었는데도 방 안이 저절로 밝았다. 황고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곧 공조리(功曹吏) 충란(充蘭)을 불러 나가서 점쟁이에게 묻게 하였다. 충란은 마하졸(馬下卒) 소영(蘇永)과 함께 점쟁이 왕장손(王長孫)의 처소에 갔다. 장손이 점을 치고 소영과 충란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길한 일이다. 말을 많이 하지 마라.」라고 하였다. 이 해에 경천(景天)·비화(備火) 가운데에 벼가 났는데, 세 뿌리에 한 줄기, 아홉 이삭이었고 [보통] 벼보다 한두 자 더 컸으니 대개 가화(嘉禾)였다. 원제(元帝) 초에 봉황(鳳凰)이 제양궁에 내려왔으므로 지금 제양궁에 봉황려(鳳凰廬)가 있다. 처음 이부(李父)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시계(柴界)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적병을 만나 황급하고 당황하여 제양의 옛집으로 달아났다. 도착할 무렵 불같이 새빨간 빛이 옛집 길 남쪽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빛이 번쩍번쩍 위로 하늘에 닿았다가 잠시 뒤에 보이지 않았다. 왕망(王莽) 때에 알자(謁者) 소백아(蘇伯阿)가 기운을 잘 바라보았는데, 사신으로 용릉(舂陵)[舂]을 지나다가 [보니] 성곽이 울울총총(鬱鬱蔥蔥)하였다. 광무가 하북(河北)에 이르러 백아와 만나 묻기를 「경이 전에 용릉을 지날 때 무엇으로 그 기운이 좋은 줄 알았는가?」라고 하니, 백아가 대답하기를 「그 울울총총한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대개 천명이 마땅히 흥하고 성왕(聖王)이 마땅히 나올 때에는 앞뒤의 기운의 징험이 밝게 드러난다. 선대를 이어 문(文)을 지키는 임금은 앞의 기틀에 기대어 하늘의 빛나는 기운을 받으므로 징험을 말할 것이 못 된다. 창업하여 용처럼 일어나는 자는 미천함에서 말미암아 곤궁한 가운데서 일어나니, 고조나 광무 같은 이에게 어찌 하늘과 사람과 신괴의 빛나고 드러난 징험이 없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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