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사람이 하늘에서 귀한 명을 받으면 반드시 땅에 길한 증험이 나타난다. 땅에 나타나므로 천명이 있음을 [안다]. 증험이 나타나는 것은 한 가지가 아니니, 혹은 사람과 사물로, 혹은 상서로운 징조로, 혹은 빛과 기운으로 [나타난다]. 전(傳)에 이르기를, 황제(黃帝)는 잉태된 지 스무 달 만에 태어났고, 태어나면서 신령하여 어려서도 말을 할 수 있었다. 자라서는 제후를 거느리니 제후가 그에게 귀의하였다. 곰과 큰곰을 가르쳐 싸우게 하여 염제(炎帝)를 치니 염제가 패하였다. 성이 남과 달랐으므로 어머니 몸에 열 달을 더 머물렀고, 명이 제왕이 될 것이었으므로 짐승을 가르칠 수 있어 짐승이 그를 위해 부림을 당하였다. 요(堯)의 몸은 가까이 가면 해와 같고 바라보면 구름과 같았다. 홍수가 하늘에 넘치고 뱀과 용이 해를 끼치자, 요가 우(禹)에게 물을 다스리게 하니, 뱀과 용을 몰아내어 물이 다스려져 동쪽으로 흐르고 뱀과 용은 숨어 살았다. 특별하고 기이한 골상이 있었으므로 기이한 증험이 있었고, 신령한 명이 있었으므로 사물을 증험하는 효과가 있었으며, 천명이 귀할 것이었으므로 당후(唐侯)로부터 들어가 제왕의 자리를 이었다.
순(舜)이 요를 만나기 전에는 홀아비로 미천한 곳에 있었다. 고수(瞽瞍)와 상(象)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여, 곳간을 고치게 하고는 그 아래에 불을 질렀고, 우물을 치게 하고는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순은 곳간에서 내려와 화재를 입지 않았고, 우물 옆을 뚫고 나와 흙의 해를 입지 않았다. 요가 듣고 불러 쓰며 직무로 시험하였다. 관직이 다스려지고 직무가 닦여 일에 폐하거나 어지러운 것이 없었으며, 큰 산기슭의 들에 들어가게 하였으나 범과 이리가 덮치지 않고 살무사와 뱀이 물지 않았으며, 사나운 바람과 세찬 비를 만나도 가는 길에 헤매지 않았다. 무릇 사람이 죽이려 해도 해칠 수 없었고, 독충이 쏘는 들에서도 짐승과 벌레가 상하게 할 수 없었으며, 마침내 제왕의 명을 받아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후직(后稷)의 (時)[어머니]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았는데, 혹은 제곡(帝嚳)의 옷을 입고 제곡이 쉬던 곳에 앉아 쉬었다고도 하며, [그리하여] 잉태하였다. 괴이하게 여겨 좁은 골목에 버렸으나 소와 말이 감히 밟지 않았고, 얼음 위에 두었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어 경사가 그 몸에 모였다. 어머니가 그 신이함을 알고 거두어 길렀다. 자라서 요를 보좌하여 지위가 사마(司馬)에 이르렀다. 오손왕(烏孫王)은 호가 곤막(昆莫)인데, 흉노(匈奴)가 그 아비를 쳐서 죽였을 때 곤막이 태어나 들에 버려졌으나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가서 먹였다. 선우(單于)가 괴이하게 여겨 신이하다 하여 거두어 길렀다. 장성하자 병사를 부리게 하니 여러 번 공이 있었다. 선우가 이에 그 아비의 백성을 다시 곤막에게 주고, 서쪽 성을 길이 지키게 명하였다.
무릇 후직은 버려져서는 안 될 [명]이었으므로 소와 말이 밟지 않고 새가 깃과 날개로 그 몸을 덮어 아껴 주었다. 곤막은 죽어서는 안 될 [명]이었으므로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다가가 먹였다.
북이(北夷) 탁리국(橐離國) 왕의 시녀가 임신하자 왕이 그를 죽이려 하였다. 시녀가 대답하기를 「달걀만 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제가 임신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뒤에 아들을 낳자 돼지우리에 버렸는데, 돼지가 입김으로 불어 주어 죽지 않았다. 다시 마구간에 옮겨 두어 말이 밟아 죽이게 하려 하였으나, 말이 또 입김으로 불어 주어 죽지 않았다. 왕은 천자[하늘의 아들]가 아닌가 의심하여 그 어머니에게 거두어 노비로 기르게 하고,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여 소와 말을 치게 하였다. 동명이 활을 잘 쏘자 왕은 그가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동명이 달아나 남쪽으로 엄호수(掩淲水)에 이르렀다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가 되어 동명이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흩어지자 추격병은 건널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부여(夫餘)에 도읍하여 왕이 되었으므로 북이에 부여국이 있게 되었다
. 동명의 어머니가 처음 잉태할 때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태어나자 버렸는데, 돼지와 말이 입김으로 불어 주어 살렸다. 자라자 왕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었다. 천명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이었으므로 돼지와 말의 구원이 있었고, 명이 부여에 도읍하여 왕이 될 것이었으므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는 도움이 있었다.
이윤(伊尹)이 태어나려 할 때, 그 어머니가 꿈에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절구에서 물이 나오면 빨리 동쪽으로 달아나라」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이튿날 아침 돌아보니 절구에서 물이 나오므로 곧 동쪽으로 십 리를 달아났는데, 돌아보니 그 고을이 모두 물에 잠겨 있었다. 이윤은 명이 물에 빠져 죽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그 어머니가 꿈에 감응하여 달아난 것이다. 이를 미루어 논하면, 역양(歷陽)의 도성에서 그 명이 이윤 같은 부류인 자는 반드시 미리 감동하여 다른 곳에 가 있는 효험이 있었을 것이다. 제양공(齊襄公)의 난리 때, 환공(桓公)은 공자(公子)로서 자규(子糾)와 즉위를 다투었다. 관중(管仲)은 자규를 보필하고, 포숙(鮑叔)은 환공을 보좌하였다. 관중이 환공과 다투며 활을 당겨 그를 쏘았는데, 그 허리띠 고리에 맞았다. 무릇 사람의 키는 일곱 자이고 허리띠는 그 허리를 묶으며 고리는 띠에 걸려 있어, 몸에서 가리는 곳이 한 치 안에 지나지 않으니, 이미 작아서 맞히기 어렵고 또 매끄럽고 반들거려서, 칼날이나 화살촉이 고리에 맞으면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 없다. 관중이 쏘았을 때 바로 그 고리 한가운데를 맞혀 화살이 부딪쳐 떨어지고 미끄러져 옆의 살에 맞지 않았다. 명이 부귀할 것이었으므로 신령의 도움이 있어, 고리를 쏘아 [몸에] 맞지 않은 증험이 있었다. 초공왕(楚共王)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으니, 자초(子招)·자어(子圉)·자간(子干)·자석(子晰)·기질(棄疾)이다. 다섯이 모두 총애를 받아 공왕은 세울 적자를 정하지 못하고, 이에 산천에 망제(望祭)를 지내 신에게 결정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파희(巴姬)와 함께 태실(太室)의 뜰에 옥벽을 묻고, 다섯 아들에게 재계하고 들어와 절하게 하였다. 강왕(康王)은 그것을 넘었고, 자어는 팔꿈치를 그 위에 대었으며, 자간과 자석은 모두 멀리 떨어졌고, 기질은 어려서 안겨 들어왔는데 두 번 절할 때 모두 [옥벽의] 끈을 눌렀다. 그러므로 공왕이 죽자 초는 강왕이 되었으나 아들 대에 이르러 [나라를] 잃었고, 어는 영왕(靈王)이 되었으나 자기 대에 시해되었으며, 자간은 왕이 되었으나 십여 일이었고, 자석은 서지 못하고 또 주살될까 두려워 죽었으니, 모두 끊어져 후사가 없었다. 기질이 뒤에 서서 마침내 초의 제사를 이었으니, 그 신의 부절과 같았다. 그들이 왕 노릇 한 날의 길고 짧음이 절한 곳과 옥벽의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상응하였다. 무릇 옥벽은 땅속에 있어 다섯 아들은 알지 못하였는데, 서로 이어 들어가 절하매 멀고 가까움이 같지 않았고, 끈을 누른 것은 마치 신이 무릎 꿇는 곳을 가르쳐 준 듯하였다. 진(晉)의 도안고(屠岸賈)가 난을 일으켜 조순(趙盾)의 아들 삭(朔)을 죽였는데, 그 아내에게 유복자가 있었다.
도안가(屠岸賈)가 이를 듣고 궁중을 수색하자, 어머니가 아이를 바지 속에 넣고 빌기를 「조씨(趙氏)의 종족이 멸망할 것이라면 너는 울어라.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면 너는 소리를 내지 마라.」라고 하였다. 수색할 때에 [아이가] 끝내 울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벗어나 살 수 있었다. 정영(程嬰)이 [아이를] 싸서 [齎] 업고 산속에 숨었다. 경공(景公) 때에 이르러 한궐(韓厥)이 경공에게 말하였다. 경공이 이에 한궐과 함께 조씨의 고아를 세워 조씨의 제사를 잇게 하니, 이가 문자(文子)이다. 조씨의 고아가 소리를 내지 않았을 때에는 마치 누군가 그 입을 막은 것 같았다. 이로써 말하면 조문자(趙文子)가 선 것은 명(命)이다.
고황제(高皇帝)의 어머니는 유온(劉媼)이라 하는데, 일찍이 큰 못의 둑에서 쉬다가 꿈에 신(神)과 만났다. 이때 천둥과 번개가 치고 어두컴컴하였는데, 교룡(蛟龍)이 그 위에 있었다. 태어나서는 [용모가] 아름다웠다. 성품이 술을 좋아하여 일찍이 왕온(王媼)과 무부(武負)에게서 술을 외상으로 사서 마시고 취하여 누워 있으면, 왕온과 무부는 그의 몸에서 늘 신괴(神怪)한 것을 보았다. [고조가] 머물러 마시고 취할 때마다 술이 몇 배나 팔렸다. 뒤에 못 가운데를 가다가 손으로 큰 뱀을 베었는데, 한 노파가 길을 막고 울며 「적제(赤帝)의 아들이 내 아들을 죽였다.」라고 하였다. 이 징험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진시황제(秦始皇帝)가 늘 「동남쪽에 천자(天子)의 기운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동쪽으로 순행하여 그것을 눌러 막고자 하였다. 고조가 일어났을[起] 때에 여후(呂后)와 함께 망산(芒山)·탕산(碭山)의 산과 못 사이에 숨었다. 여후가 사람들과 함께 그를 찾을 때에 그 위에 늘 기운이 곧게 솟아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가서 찾으면 곧 그 있는 곳을 찾았다. 뒤에 항우(項羽)와 약속하기를, 먼저 진(秦)의 관(關)에 들어가는 자가 왕이 되기로 하였다. 고조가 먼저 이르자 항우가 원망하고 한스러워하였는데, 범증(范增)이 말하기를 「내가 사람을 시켜 그의 기운을 바라보게 하니, 기운이 모두 용(龍)이 되어 오색을 이루었으니, 이는 모두 천자의 기운이다. 급히 치십시오」라고 하였다. 고조가 가서 항우에게 사죄하였다. 항우는 아보(亞父)와 고조를 죽일 것을 꾀하여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칼을 뽑아 일어나 춤추게 하였다. 항백(項伯)이 이를 알고 항장과 함께 일어났다. 칼이 고조 위로 향할 때마다 항백이 곧 몸으로 고조의 몸을 덮으니, 칼이 끝내 내려가지 못하고 죽이려는 형세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마침 장량(張良)과 번쾌(樊噲)의 구원이 있어 마침내 벗어날 수 있었고, 드디어 천하의 왕이 되었다. 처음 잉태할 때에 교룡의 신이 있었고, 태어난 뒤에는 술집에서 구름 기운의 괴이함을 보았으며, 밤길에 뱀을 베자 뱀의 노파가 슬피 울었고, 시황과 여후가 빛나는 기운을 바라보았으며, 항우가 죽이려고 꾀하자 항백이 가려 주어 꾀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장량과 번쾌를 만났으니, 이는 대개 부귀의 징험으로서 기운이 드러나자 사물이 응하고 사람이 도와 구원한 것이다. 두태후(竇太后)의 아우는 이름이 광국(廣國)인데, 나이 네다섯 살에 집이 가난하여 남에게 약탈되어 팔렸다. 그 집에서는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고, [그는] 열 몇 집에 전전하여 팔렸다. 의양(宜陽)에 이르러 그 주인을 위하여 산에 들어가 숯을 구웠다. 저녁에 추워서 숯 [가마] 아래에 누웠는데, 숯이 무너져 백여 명이 모두 깔려 죽었으나 광국만 홀로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 점을 쳐 보니 며칠 안에 후(侯)가 될 것이라 하였다. 그 집 [주인]을 따라 장안(長安)에 갔다가 두황후(竇皇后)가 새로 섰는데 집이 청하(淸河) 관진(觀津)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에 글을 올려 스스로 사정을 아뢰었다. 두황후[皇]가 문제(文帝)[文]에게 말하니, 불러 보고 그 연고를 물었는데 과연 그러하였으므로 이에 후하게 하사하였다. 경제(景帝)[景]가 즉위하자 광국을 장무후(章武侯)로 삼았다. 무릇 쌓은 숯이 무너져 백여 명이 모두 죽었는데 광국만 홀로 벗어났으니, 명(命)이 마땅히 부귀할 것이었으므로 한갓 살아났을 뿐 아니라 또 후로 봉해진 것이다. 우자대(虞子大)는 진류(陳留) 동혼(東昏)[昏] 사람인데, 그가 태어날 때가 밤이었다. 막 어머니 몸에서 벗어나자 어머니가 그 위에 한 필의 비단 같은 모양이 있어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날이 밝아 사람들에게 물으니, 사람들이 모두 「길(吉)하고 귀(貴)하다.」라고 하였다. 기운이 하늘과 통하였으므로 자라서 벼슬하여 지위가 사도공(司徒公)에 이르렀다. 광문백(廣文伯)은 하동(河東) 포판(蒲阪) 사람인데, 그 역시 한밤중에 태어났다. 막 태어나자 어떤 사람이 문에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가 나가서 응하였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무 지팡이 하나가 그 문 옆에 꽂혀 있었는데, 좋기가 뭇 [지팡이와] 달랐다. 그 아버지가 지팡이를 가지고 문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보이니, 사람들이 점쳐서 「길(吉)하다」라고 하였다. 문백은 자라서 배우고 벼슬하여 지위가 광한태수(廣漢太守)에 이르렀다. 문백이 마땅히 부귀할 것이었으므로 아버지가 지팡이를 받은 것이다. 그 점친 자의 말은 「지팡이는 아들의 힘에 해당한다.」라는 것과 같다. 광무제(光武帝)는 건평(建平) 원년 12월 갑자(甲子)일에 제양궁(濟陽宮) 후전(後殿) 제2 내실 안에서 태어났다. 황고(皇考)가 제양령(濟陽令)이었는데, 그때 밤에 불이 없었는데도 방 안이 저절로 밝았다. 황고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곧 공조리(功曹吏) 충란(充蘭)을 불러 나가서 점쟁이에게 묻게 하였다. 충란은 마하졸(馬下卒) 소영(蘇永)과 함께 점쟁이 왕장손(王長孫)의 처소에 갔다. 장손이 점을 치고 소영과 충란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길한 일이다. 말을 많이 하지 마라.」라고 하였다. 이 해에 경천(景天)·비화(備火) 가운데에 벼가 났는데, 세 뿌리에 한 줄기, 아홉 이삭이었고 [보통] 벼보다 한두 자 더 컸으니 대개 가화(嘉禾)였다. 원제(元帝) 초에 봉황(鳳凰)이 제양궁에 내려왔으므로 지금 제양궁에 봉황려(鳳凰廬)가 있다. 처음 이부(李父)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시계(柴界)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적병을 만나 황급하고 당황하여 제양의 옛집으로 달아났다. 도착할 무렵 불같이 새빨간 빛이 옛집 길 남쪽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빛이 번쩍번쩍 위로 하늘에 닿았다가 잠시 뒤에 보이지 않았다. 왕망(王莽) 때에 알자(謁者) 소백아(蘇伯阿)가 기운을 잘 바라보았는데, 사신으로 용릉(舂陵)[舂]을 지나다가 [보니] 성곽이 울울총총(鬱鬱蔥蔥)하였다. 광무가 하북(河北)에 이르러 백아와 만나 묻기를 「경이 전에 용릉을 지날 때 무엇으로 그 기운이 좋은 줄 알았는가?」라고 하니, 백아가 대답하기를 「그 울울총총한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대개 천명이 마땅히 흥하고 성왕(聖王)이 마땅히 나올 때에는 앞뒤의 기운의 징험이 밝게 드러난다. 선대를 이어 문(文)을 지키는 임금은 앞의 기틀에 기대어 하늘의 빛나는 기운을 받으므로 징험을 말할 것이 못 된다. 창업하여 용처럼 일어나는 자는 미천함에서 말미암아 곤궁한 가운데서 일어나니, 고조나 광무 같은 이에게 어찌 하늘과 사람과 신괴의 빛나고 드러난 징험이 없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