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자(神峯子)가 말하였다. 하늘이 부여한 것이 명(命)이니, 곤궁과 영달, 요절과 장수는 기품(氣稟)이 앞서 정해진 데 매여 있어, 비록 유가(儒家)의 성현이라도 옮기거나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이하게 처하여 명을 기다리니, 오직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명의 이치는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헌원씨(軒轅氏)에게서 비롯되어 비로소 간지(干支)가 내려왔고, 대요(大撓)가 갑자(甲子)를 지어 마침내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로써 [추산하여] 이를 명이라 하였다. 대개 하늘이 부여한 명과 그 헤아림은 하나이다. 다만 처음에는 상고할 책이 없었는데, 당(唐)의 원수성(袁守成)에 이르러 비로소 『오성(五星)』 지남서(指南書)를 지었고, 여재(呂才)는 『합혼서(合婚書)』를 지었으며, 일행선사(一行禪師)는 성력서(星曆書)를 지었고, 오대(五代)에는 『녹로(轆轤)』서가 있었으며, 전송(前宋)에는 『전가(殿駕)』서가 있었고, 남송(南宋)·요(遼)·금(金)에는 『교요(喬拗)』서가 있었으며, 원(元)에는 야율초재(耶律楚材)의 책과 배대유(裴大猷)의 『금당허실(琴堂虛實)』이 있었는데, 모두 사람의 생년의 오행 납음(納音) 소속과 신명(身命)의 한도(限度)를 주(主)로 삼고 칠요(七曜)·사여(四餘)를 용(用)으로 삼았다. 명(明)에 이르러 서균(徐均)이 『자평(子平)』서를 지어 오로지 일간(日干)을 주된 근본으로 삼았다.
월령(月令)을 용신(用神)으로 삼고 세(歲)와 시(時)를 보좌로 삼았다. 아! 명서의 저작이 여기에 이르러 다하였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대개 오성(五星)의 설은 다만 생년을 주로 삼아 월과 일시를 혹 빠뜨리고, 혹은 납음을 주로 삼아 간(干)과 지(支)를 혹 빠뜨리니, 어찌 자평의 이치가 홀로 그 중(中)을 얻은 것만 하겠는가. 일(日)은 월기(月氣)에 통하고 세와 시는 맥의 끝이 되며, 일은 몸의 주인이 되고 월은 둥지가 되며 세와 시는 문호(門戶)가 되니, 이것을 얻고도 저것을 빠뜨리지 않고, 위에 통하면서도 [아래를] 빠뜨리지 않으며, 남는 것을 억누르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니, 중정(中正)의 도를 누가 이만큼 얻겠는가. 나는 여러 책을 두루 섭렵하여 자못 그 뜻을 깨우쳤는데, 명리(命理)만을 살펴보면 『오성지남(五星指南)』, 『금심상서(琴深嘗書)』, 『연해자평(淵海子平)』서가 있어 이치가 바른 데서 나오고 법을 세움이 훌륭하나, 다만 그 가운데 자못 근거 없는 말과 진퇴(進退)의 설이 있어 확연히 일정하게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견해가 없으니, 후세가 이로 말미암아 설을 세움이 더욱 많아져 사람의 미혹을 더욱 불렸고, 비록 주고받더라도 오류를 답습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마치 길 가는 이가 길을 잃고 맹인에게 가리켜 달라고 묻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궁벽한 시골까지 끝까지 찾아 궁구하였으나 모두 떠벌리며 술수를 팔 뿐이어서, 그 말을 들으면 옳은 듯하나 그 이치를 따져 보면 그르니, 끝내 한 사람도 그 당폐(堂陛)에 견줄 만하여 그 추요(樞要)를 추려 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아아!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실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니, 나는 깊이 개탄한다. 이로 말미암아 이 도에 마음을 다한 지 사십여 년에 한 이치를 문득 얻어, 비로소 그 이치에 바른 길이 있고 결코 곁가지로 나가지 않음을 깨닫고, 오성정설(五星正說), 오성류설(五星謬說), 자평제격정설(子平諸格正說), 자평제격류설(子平諸格謬說), 동정설(動靜說), 개두설(蓋頭說), 육친설(六親說), 병약설(病藥說), 조고약왕손익생장팔법설(雕枯弱旺損益生長八法說), 인명견험설(人命見驗說)을 세웠으니, 대개 바른 이치를 존숭하고 여러 그릇된 설을 물리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름하여 『명리정종(命理正宗)』이라 하고 판각에 부쳐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나누니, 거의 육예(六藝) 가운데 만분의 일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천(臨川) 서계일수(西溪逸叟) 장남(張楠)이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