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텅 비어 넓으니 육기(六氣)가 돌아 사시(四時)를 이루고, 땅은 두텁고 그윽하고 깊으니 오행(五行)이 화생(化生)하여 만물을 이룬다. 가히 무궁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 할 만하다. 성인이 법을 세워 추보(推步)함은 대개 그 수(數)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수를 세운 까닭을 보면 또한 모두 자연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경전에 실린 것이 같고 다르지 않으며, 추론하여 그 기틀에 이르고 궁구하여 그 변화에 통하되 모두 수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는 수(水)요, 둘째는 화(火)요, 셋째는 목(木)이요, 넷째는 금(金)이요, 다섯째는 토(土)라 함은 모두 유래가 있다. 수는 북방 자(子)의 자리이니, 자는 양의 처음 하나로 양수(陽數)이므로 수를 일(一)이라 한다. 화는 남방 오(午)의 자리이니, 오 는 음의 처음 둘로 음수(陰數)이므로 화를 이(二)라 한다. 목은 동방에 거하니 동은 양이고, 삼 은 홀수이니 또한 양이므로 목을 삼(三)이라 한다. 금은 서방에 거하니 서는 음이고, 사는 짝수이니 또한 음이므로 금을 사(四)라 한다. 토는 서남과 장하(長夏)에 응하니, 오는 홀수로 또한 양이므로 토를 오(五)라 한다. 이로써 논하면 수는 음양으로써 배합한 것이다. 만약 그 깊은 뜻을 상고하면 수는 일(一)에서 생한다. 천지가 나뉘지 않고 만물이 이루어지지 않은 처음에 먼저 수에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靈樞經』에 이르기를 “태일(太一)은 수의 존호이다. 천지에 앞선 어머니요, 만물보다 뒤의 근원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를 징험하면 초목의 씨와 열매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사람·벌레의 태(胎)·알·배아가 모두 수이니, 어찌 일(一)로 삼지 않겠는가? 그 수가 모여 형질이 화함에 이르면, 음양의 기운을 가운데 갖춘 뒤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물이 작고 맛이 쓴 것은 화의 조짐이고, 사물이 익으면 단데 이는 토의 맛이다. 단맛이 극에 이른 뒤에 담백해지니 담백함이 근본이다. 그런데 사람은 부모 음양의 생성 조화를 품부받으므로 먼저 두 신장이 생기니, 왼쪽 신장은 수에 속하고 오른쪽 신장은 화에 속한다. 화를 명문(命門)이라 하니, 곧 화는 수로 인한 뒤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화를 다음 둘째라 한다. 대개 초목의 씨와 열매는 크고 작음이 비록 다르나 그 가운데 모두 둘이 서로 합한 것이 있으니, 사람의 신장과 같아서 또한 음양의 조짐이다. 이 때문에 만물은 음양이 합체하지 않으면 화생할 수 없다. 이미 음양이 합체한 뒤에 봄에 생하고 가을에 이루므로, 다음 셋째를 목이라 하고 다음 넷째를 금이라 한다. 대개 수는 속하는 바가 있고, 화는 감추는 바가 있으며, 목은 피어나는 바가 있고, 금은 가르는 바가 있으나, 모두 토로 인한 뒤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금목수화는 모두 토를 기다린 뒤에 이루어진다. 그 토의 수를 겸하여 오(五)로써 이루면 수는 육(六), 화는 칠(七), 목은 팔(八), 금은 구(九)이다. 토가 늘 오의 생수(生數)로서 십(十)에 이를 수 없는 것은 토가 십을 기다려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니, 이는 생성의 수가 모두 오로써 합하는 것이다. 대연(大衍)의 수가 이로 말미암아 세워짐을 밝히면, 만물이 어찌 능히 그 수를 벗어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