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목(甲木)은 우레이다. 우레는 양기(陽氣)가 내뿜는 것이니, 갑목(甲木)이 양에 속하므로 우레에서 상(象)을 취한 것이다. 「월령(月令)」을 상고하면 중춘(仲春)의 달에 우레가 비로소 소리를 내니 갑목(甲木)이 왕한 것이 곧 그 증험이며, 하물며 우레는 땅에서 떨쳐 일어나고 목도 땅에서 생하니 그 이치가 또한 다르지 않다. 갑목(甲木)이 신(申)에 이르러 마침내 절(絶)하는 것은 우렛소리가 신(申)에 이르러 점차 거두어지기 때문이다. 무릇 명이 갑일(甲日)에 속하면 일주는 봄철을 만나기를 반기며, 혹 유상(類象)이거나 혹 추건(趨乾)이거나 혹 요사(遙巳)이거나 혹 공귀(拱貴)이면 모두 크게 길하고, 운은 서방을 반기지 않는다. 경(經)에 이르기를 '목이 봄에 생하면 세상에 처함이 편안하고 반드시 장수한다'고 하였다. 을목(乙木)은 바람이다. 을목(乙木)은 장생(長生)이 오(午)에 있고 패(敗)가 사(巳)에 있다. 오(午)에서 생하는 것은 대개 을(乙)이 산림의 살아 있는 나무여서 여름이 오면 무성해지니, 시(詩)에 이른바 '천 그루 여름 나무가 푸르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 패(敗)가 사(巳)에 있음은 어째서인가? 사(巳)는 손(巽)의 자리이고 손(巽)은 바람이니 목이 성하면 바람이 생긴다. 바람은 목에서 생하나 도리어 목을 꺾으니, 마치 화가 목에서 생하나 도리어 목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그 패(敗)를 취함이 진실로 마땅하다. 이른바 을목(乙木)이 바람이라는 것은 목이 그 [바람이] 스스로 생겨나는 곳이기 때문일 뿐이다. 만약 사람이 을일(乙日)에 태어났으면 가을 월령(月令)에 있을 때 크게 길하니, 가을 월령(月令)은 금이 왕하여 을목(乙木)이 화(化)할 수도 있고 종(從)할 수도 있으며, 뿌리가 서리고 마디가 얽혀 날카로운 연장이 아니면 다듬어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해(亥)를 만나면 반드시 사(死)하니, 그것은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때이기 때문인가? 병(丙)은 해이다. 《설괘전(說卦傳)》에 이르기를 '이(離)는 불이 되고 해가 된다'고 하였으니, 해와 불은 모두 문명(文明)의 상이다. 이 때문에 병화(丙火)를 해라 하는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태양이 아침에 나와 저녁에 들어가는 것과 양화(陽火)가 인(寅)에서 생하여 유(酉)에서 사(死)하는 것이 또 무엇이 다르겠는가? 무릇 여섯 병(丙)일이 겨울·여름에 생하면 봄·가을만 못하니, 봄 해는 만물을 따뜻하게 하는 공이 있고 가을 볕은 만물을 말리는 쓰임이 있으나, 겨울은 음침하고 어두우며 여름은 찌는 듯 뜨거우니 마땅히 자세히 헤아려야 한다. 정화(丁火)는 별이다. 병화(丙火)가 사(死)하면 정화(丁火)가 곧 따라 생하니, 하늘에서 해가 저물면 별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처럼 별의 형상은 오직 밤에 들어야 찬란하고 음화(陰火)는 오직 어둠에 가까워야 휘황하니, 정(丁)을 별이라 하지 않고 무엇이라 하겠는가? 무릇 정일(丁日)에 태어난 사람은 밤을 만나기를 반기고 가을을 만나기를 반기니, 별빛이 때를 얻은 것과 같다. 또 신약(身弱)한 땅으로 가기를 반기니, 마치 돌 속에 감추어진 것이 정화(丁火)에 속하여 돌이 비록 물속에 있더라도 즉시 꺼내어 치면 또한 절로 불이 있는 것과 같다. 그 정사(丁巳) 일주 하나는 부형(父兄)과 처자(妻子)를 많이 극하니, 대개 재성(財星)은 비겁(比劫)을 꺼리고 형이 아우 아래에 굽히며, 사(巳) 중에 무토(戊土)가 있으니 상관(傷官)이기 때문이다. 무토(戊土)는 노을이다. 토는 전일한 기운이 없어 화에 의지하여 생하고, 노을은 정해진 형체가 없어 해를 빌려 나타나니, 병화(丙火)가 해임을 알면 무토(戊土)가 노을임을 알 것이다. 이 노을이란 해의 나머지이니, 해가 다하면 노을도 장차 사라지고 화가 꺼지면 토는 살아날 뜻이 없으므로 노을이라 한다. 만약 무토(戊土) 일주가 사주에 수를 띠기를 좋아하니 [그러면] 상격(上格)이 되는 것은 노을과 물이 서로 비추어 문채를 이루기 때문이다. 다시 연월 천간에 계(癸)를 보면 반기니, 계(癸)는 비가 되어 비 온 뒤 노을이 나타나 문명(文明)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기토(己土)는 구름이다. 기토(己土)는 생하여 유(酉)에 거하니, 유(酉)는 태(兌)의 방위이고 그 상은 못이다. 선정(先正)이 말하기를
"하늘이 때맞춰 비를 내리니 산천이 구름을 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구름이란 산과 못의 기운이니, 기(己)가 비록 토에 속하나 이로써 논하면 그것을 구름이라 하는 것도 마땅하다. 그러므로 갑기(甲己)가 합하여 토로 화하면 그 기운이 위로 올라가 구름이 퍼지고, 구름과 우레가 사귀어 비를 만들면 그 은택이 아래로 이르러 토가 윤택해진다. 이것이 조화(造化)의 지극히 오묘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릇 일주가 기토(己土)에 속하면 유(酉)에 앉음을 귀히 여기고, 봄에 생함을 귀히 여기며, 인성(印星)을 보는 것을 귀히 여긴다. 해(亥)에 앉은 자는 을목(乙木)을 보아서는 안 되니, 구름이 하늘로 올라 바람을 만나면 어지러이 흩어져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금(庚金)은 달이다. 경(庚)은 유(酉) 방위의 양금(陽金)인데 어떻게 그것이 달에 짝함을 아는가? 답한다. 오행에 경(庚)이 있음은 사시(四時)에 달이 있는 것과 같다. 경(庚)은 가을을 기다리지 않고 장생(長生)하나 반드시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성하고, 달은 가을을 기다린 뒤에야 달이 되는 것은 아니나 반드시 가을이 되어야 더욱 밝다. 빛깔로 말하면 달은 진실로 희니 그 빛깔이 같고, 기운으로 말하면 금은 수를 생하고 조수는 달에 응하니 그 기운이 같다. 경(經)에 이르기를 '금은 자(子)에서 가라앉는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달과 함께 물결에 잠김을 보인 것이다. 초사흘 달은 경(庚) 방위에 보이니 달이 처음 생길 때 경(庚)과 자리를 함께하므로 경금(庚金)은 달이라 한다. 만약 사람이 경일(庚日)에 태어나고 사주에 을(乙)·사(巳) 글자가 나오면 이를 월백풍청(月白風清, 달 밝고 바람 맑음)이라 하니, 가을이 으뜸이고 겨울이 그다음이며 봄·여름은 취할 것이 없다. 신금(辛金)은 서리이다. 8월은 신금(辛金)이 건록(建祿)하는 자리이니, 이 달에는 천기(天氣)가 숙살(肅殺)하여 흰 이슬이 서리가 되고 초목이 누렇게 떨어져 쇠한다. 그러므로 오행에서 음목(陰木)이 이 자리에서 절(絶)하니, 마치 나무가 도끼로 베임을 겪으면 살아날 바가 없는 것과 같다. 도끼가 때맞춰 산림에 들고 된서리가 때맞춰 초목을 죽이니, 천도(天道)로 헤아리고 인사(人事)로 참고하면 신금(辛金)이 서리임이 참으로 믿을 만하다. 만약 신(辛)일 사람이 묘(卯)에 앉고 을(乙)이 투간(透干)하지 않으면 크게 부유하고, 해(亥)에 앉고 병(丙)이 투간(透干)하면 귀하다. 겨울에 생하는 것을 좋아한다. 임수(壬水)는 가을 이슬이다. 봄에도 이슬이 있는데 어찌 유독 가을에 견주는가? 대개 봄 이슬은 비와 이슬처럼 이미 적시는 이슬이고, 가을 이슬은 서리와 이슬처럼 이미 내린 이슬이다. 이슬은 하나이나 봄은 생(生)을 주관하고 가을은 살(殺)을 주관하니 공용(功用)이 같지 않음이 이와 같다. 그런데 내가 임(壬)을 가을 이슬로 삼는 것은, 대개 이슬은 수에 속하고 임수(壬水)는 신(申)에서 생하니, 수는 본래 목을 생할 수 있는 것인데 수가 이미 여기서 생한다면 목은 어찌하여 여기서 절(絶)하는가? 그러므로 임(壬)이 이슬이 됨은 가을 이슬임을 안다. 만약 임일(壬日)이 가을에 생하고 정화(丁火)를 보면 가장 현달하니, 정(丁)은 은하수가 되고 임(壬)은 가을 이슬이 되어 찌는 더위를 한 번에 씻어 내니 천상(天象)이 환하게 밝아진다. 계수(癸水)는 봄 장맛비이다. 계수(癸水)는 묘월(卯月)에 생하니 봄 장맛비[春霖]라 부른다. 대개 음목(陰木)이 비를 얻어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신(申)에 이르면 사(死)하니 7·8월에는 가뭄이 많기 때문이다. 또 묘(卯) 앞의 한 자리가 진(辰)인데, 진(辰)은 용궁(龍宮)이니, 묘(卯)는 용궁에 가까워 수가 생하고 용이 한 번 떨치면 마침내 비로 변한다. 묘(卯)는 뇌문(雷門)이니 우레가 한 번 울리면 용이 반드시 일어나니, 이를 보면 계수(癸水)는 봄 장맛비이다. 만약 계묘일(癸卯日)에 기(己) 자가 투출(透出)하면 구름이 가고 비가 베풀어지는 상이 있어 그 사람은 반드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주가 있다. 봄·여름은 길하고 가을·겨울은 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