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대의(五行大義) 7장 卷一 第一起大衍論易動靜數 · 원문+번역원문+번역원문번역독음인쇄 창의 대상(프린터)에서 「PDF로 저장」을 고르세요. 휴대폰은 공유 → 인쇄 → PDF.

오행대의 五行大義

蕭吉
7장 卷一 第一起大衍論易動靜數 · 원문+번역
원문: 위키문헌 등 공개 판본(교감본 아님) · 번역: AI 초벌 직역(검수 중)

卷一 第一起大衍論易動靜數

凡범萬만物물之지始시。莫막不불始시於어無무。而이後후有유。是시故고易역有유大대極극。是시生생兩량儀의。兩양儀의生생四사序서。四사序서。生생之지所소生생也야。有유萬만物물滋자繁번。然연後후萬만物물生생成성也야。皆개由유陰음陽양二이氣기。鼓고舞무陶도鑄주。互호相상交교感감。故고孤고陽양不불能능獨독生생。單단陰음不불能능獨독成성。必필須수配배合합以이鑪로冶야。爾이乃내萬만物물化화通통。是시則칙天천有유其기象상。精정氣기下하流류。地지道도含함化화。以이資자形형始시。陰음陽양消소長장。生생殺살用용成성。明명其기道도難난明명。非비數수不불可가究구。故고因인數수以이辨변之지。數수之지顯현理리。猶유筌전蹄제之지取취魚어兔토。陽양順순唱창始시。陰음佐좌其기終종。窮궁奇기偶우之지數수。備비相상成성之지道도。極극變변化화之지源원者자。詳상於어蓍시策책之지數수也야。七칠八팔爲위靜정。九구六륙爲위動동。陽양動동而이進진。變변七칠之지九구。象상氣기息식也야。明명陽양道도之지舒서。以이象상君군德덕。唱창始시不불休휴。無무所소屈굴後후。去거極극一일等등。而이猶유進진之지。故고九구動동也야。陰음動동而이退퇴。變변八팔之지六륙。象상氣기消소也야。以이明명臣신法법有유所소屈굴後후。唱창和화而이已이。事사理리近근君군。則칙靖정息식以이聽청命명。必필須수退퇴讓양。以이明명其기義의。故고八팔靜정也야。易역曰왈。分분二이以이象상兩량。掛괘一일以이象상三삼。揲설之지以이四사。以이象상四사時시者자。餘여手수有유四사七칠。故고名명七칠也야。有유四사八팔。故고名명八팔也야。有유此차。則칙靜정爻효之지數수。夏하殷은尚상質질。以이用용靜정爻효占점之지。餘여有유四사九구。故고名명九구也야。有유四사六륙。故고名명六륙也야。此차則칙動동爻효之지數수。周주備비質질文문。故고兼겸用용動동爻효。凡범大대衍연極극天천地지之지數수。五오十십有유五오也야。京경房방以이十십日일。十십二이辰진。二이十십八팔宿숙。合합應응五오十십。其기一일不불用용者자。天천之지生생氣기。將장欲욕以이虛허求구實실。故고用용四사十십九구焉언。馬마融융以이易역之지大대極극。爲위北북辰진也야。生생兩량儀의。兩양儀의生생日일月월。日일月월生생四사時시。四사時시生생五오行행。五오行행生생十십二이月월。十십二이月월生생二이十십四사氣기。北북辰진居거位위不불動동。其기餘여四사十십九구。轉전運운而이用용也야。鄭정玄현曰왈。貞정悔회六륙爻효。本본有유五오十십。定정所소用용者자。四사十십有유九구。天천地지之지數수。本본五오十십五오。天천五오與여地지十십通통。天천一일與여地지六륙通통。數수之지者자氣기則칙有유并병。并병則칙宜의減감焉언。大대衍연減감五오。故고有유五오十십。其기用용減감一일。故고四사十십有유九구。不불并병者자。不불可가減감也야。今금總총其기數수五오十십者자。天천一일至지地지十십。凡범五오十십五오也야。此차合합生생成성之지數수。若약止지言언生생數수。唯유十십有유五오。從종一일至지五오也야。易역之지所소象상。

무릇 만물의 시작은 무(無)에서 시작하여 뒤에 유(有)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역』에 태극(大極)이 있어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서(四序)를 낳는다. 사서는 낳은 것이 낳는 바이다. 만물이 번성함이 있은 연후에 만물이 생성된다. 모두 음양 두 기운이 고무하고 빚고 주조하여 서로 교감함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외로운 양은 홀로 낳을 수 없고, 홑 음은 홀로 이룰 수 없으니, 반드시 배합하여 풀무질하고 녹여야 이에 만물이 화하여 통한다. 이는 곧 하늘에 그 상이 있어 정기가 아래로 흐르고, 지도(地道)가 머금어 화하여 형체의 시작을 돕는 것이다. 음양의 소장(消長)과 생살(生殺)의 쓰임이 이루어지니, 그 도가 밝히기 어려움을 밝히는 데에는 수가 아니면 궁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수로 말미암아 이를 분변한다. 수가 이치를 드러내는 것은 통발과 올가미로 물고기와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양은 순하게 선창하여 시작하고, 음은 그 끝을 돕는다. 기우(奇偶)의 수를 다하고, 서로 이루는 도를 갖추며, 변화의 근원을 다한 것은 시책(蓍策)의 수에 자세하다. 칠(七)·팔(八)은 정(靜)이 되고, 구(九)·육(六)은 동(動)이 된다. 양은 움직여 나아가니, 칠이 변하여 구로 가는 것은 기운이 자라는 것을 본뜬 것이다. 양도(陽道)의 펼쳐짐을 밝혀 임금의 덕을 본뜨니, 선창하여 시작하고 쉬지 않으며 굽히거나 뒤처지는 바가 없다. 극에서 한 등급 떨어져 있어도 오히려 나아가므로 구가 동이다. 음은 움직여 물러나니, 팔이 변하여 육으로 가는 것은 기운이 사그라짐을 본뜬 것이다. 이로써 신하의 법도는 굽히고 뒤처지는 바가 있어 화답할 따름임을 밝힌다. 일과 이치가 임금에 가까우면 고요히 쉬며 명을 들어야 하니, 반드시 물러나 사양하여 그 의(義)를 밝혀야 한다. 그러므로 팔이 정이다. 『역』에 이르기를 “둘로 나누어 양(兩)을 본뜨고, 하나를 걸어 삼(三)을 본뜨며, 넷씩 세어 사시를 본뜬다”고 하였으니, 남은 손에 4가 일곱 번 있으므로 칠이라 이름하고, 4가 여덟 번 있으므로 팔이라 이름한다. 이것이 있으면 곧 정효(靜爻)의 수이다. 하(夏)·은(殷)은 질(質)을 숭상하여 정효로 점쳤다. 남은 것에 4가 아홉 번 있으므로 구라 이름하고, 4가 여섯 번 있으므로 육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곧 동효(動爻)의 수이다. 주(周)는 질과 문(文)을 갖추었으므로 동효를 겸하여 썼다. 무릇 대연은 천지의 수를 다한 것이니 55이다. 경방(京房)은 10일(日)·12진(辰)·28수(宿)를 합하여 50에 응하게 하였다. 그 하나를 쓰지 않는 것은 하늘의 생기(生氣)로, 장차 허(虛)로써 실(實)을 구하고자 하므로 49를 쓴다. 마융(馬融)은 『역』의 태극을 북신(北辰)으로 여겼다.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일월을 낳고, 일월이 사시를 낳고, 사시가 오행을 낳고, 오행이 12월을 낳고, 12월이 24기를 낳는다. 북신은 자리에 있어 움직이지 않고, 그 나머지 49가 돌며 운행하여 쓰인다. 정현은 이르기를 “정회(貞悔)의 육효(六爻)는 본래 50이 있는데, 쓰는 바를 정한 것이 49이다. 천지의 수는 본래 55이다. 천오(天五)와 지십(地十)이 통하고, 천일(天一)과 지육(地六)이 통한다. 이를 세면 기운이 아우러짐이 있고, 아우러지면 마땅히 덜어야 한다. 대연은 5를 덜므로 50이 있고, 그 쓰임은 1을 덜므로 49이다. 아우러지지 않은 것은 덜 수 없다”고 하였다. 이제 그 수를 총괄하여 50이라 하는 것은, 천일에서 지십까지가 모두 55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수와 성수를 합한 수이다. 만약 생수만 말하면 오직 15이니, 1에서 5까지이다. 『역』이 본뜬 바는

爻효盡진之지。有유邃수。故고自자天천地지以이下하。日일月월等등數수。皆개爲위蓍시卦괘所소攝섭。循순環환變변轉전。萬만世세無무窮궁。而이五오十십有유五오。五오本본并병數수。并병數수者자。天천之지與여地지共공。各각有유一일體체。體체各각有유一일正정應응敵적對대。今금盈영於어五오。則칙是시氣기之지并병數수。并병不불再재用용。是시其기配배義의。配배則칙爲위虛허。不불當당於어實실。不불當당於어實실。故고事사無무所소主주。所소以이揲설蓍시不불用용。又우虛허其기一일者자。掛괘一일象상無무。無무無무可가象상。故고有유之지用용極극。則칙無무之지功공見견。故고曰왈。尋심大대業업而이得득吉길凶흉。尋심吉길凶흉而이得득八팔卦괘。尋심八팔卦괘以이得득四사時시。尋심四사時시以이至지兩량儀의。尋심兩량儀의以이至지太태極극。太태極극者자。大대殺살而이極극。窮궁無무之지致치也야。遣견有유以이極극邃수。減감多다以이就취少소。此차之지謂위也야。故고曰왈。太태極극無무所소復복象상。明명其기空공寂적。非비言언象상所소詮전也야。

효(爻)가 이를 다하니 깊음이 있다. 그러므로 천지 이하 해와 달 등의 수가 모두 시괘(蓍卦)에 포섭되어 순환하고 변전하여 만세에 다함이 없다. 그런데 55에서 5는 본래 아우른 수이다. 아우른 수라는 것은 하늘과 땅이 함께하되 각각 한 체를 가지며, 체마다 각각 하나의 바른 응(應)과 대적(對敵)이 있는 것이다. 이제 5가 차고 넘치면 이는 기운의 아우른 수이니, 아우른 것은 다시 쓰지 않는다. 이것이 그 배합의 뜻이다. 배합되면 허가 되어 실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일에 주관하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시초를 셀 때 쓰지 않는다. 또 그 하나를 비우는 것은 하나를 걸어 무(無)를 본뜨는 것이다. 무는 본뜰 수 있는 무가 없으므로, 유의 쓰임이 극에 이르면 무의 공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대업(大業)을 찾아 길흉을 얻고, 길흉을 찾아 팔괘를 얻으며, 팔괘를 찾아 사시를 얻고, 사시를 찾아 양의에 이르며, 양의를 찾아 태극에 이른다”고 한다. 태극이라는 것은 크게 덜어 극에 이른 것이니, 무를 다한 지극함이다. 유를 보내어 깊음을 다하고, 많음을 덜어 적음에 나아간다는 것이 이를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태극은 다시 본뜰 바가 없다”고 하니, 그 공적(空寂)함을 밝힌 것이요, 말과 상으로 설명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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