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도다 간지(干支)여, 만물을 낳는 시초이다. 천지에 근본하니 만상이 여기에 종주한다. 음양 변화의 기틀과 시후(時候) 깊고 얕음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금목수화토에는 정해진 형체가 없고, 생극제화(生剋制化)의 이치도 취함이 한결같지 않다. 가령 죽은 나무는 흐르는 물이 오래 적셔 주는 것을 특히 마땅히 여긴다. 비유하면 무딘 쇠는 붉은 화로에서 단련됨을 가장 기뻐한다. 태양의 화는 숲의 나무를 원수로 삼음을 꺼린다. 동량의 재목은 도끼를 벗으로 구한다. 화가 수에 가로막히면 금을 녹일 수 없다. 금이 수에 가라앉으면 어찌 목을 극할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나무는 뿌리를 묻는 쇠를 꺼린다. 죽은 금은 정수리를 덮는 진흙을 싫어한다. 갑을(甲乙)이 한 덩어리를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뚫고 깎는 공을 더해야 한다. 임계(壬癸)가 오호(五湖)에 이를 수 있음은 대개 함께 흐르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가죽나무는 날카로운 도끼를 견디지 못한다. 진주는 밝은 화로를 가장 두려워한다. 약한 버들과 높은 소나무는 때에 따라 쇠왕이 나뉜다. 한 치의 금과 한 자의 쇠는 기의 쓰임에 강유가 있다. 언덕 머리의 흙은 나무가 적으면 소통하기 어렵다. 화로 안의 금은 젖은 진흙이 도리어 가린다. 비와 이슬이 어찌 썩은 나무를 적시겠는가. 성벽은 진짜 금을 낳지 않는다. 검과 창이 공을 이루었는데 화향(火鄉)을 만나면 도리어 무너진다. 성벽이 쌓였는데 목지(木地)에 이르면 상함을 근심한다. 계병(癸丙)이 봄에 나면 비도 오지 않고 개지도 않은 형상이다. 을정(乙丁)이 겨울에 나면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하늘이다. 물을 품은 금은 지극히 날카롭고, 화로를 떠난 쇠는 가장 무디다. 갑을이 강한 금을 만나면 혼이 서태(西兌, 유(酉))로 돌아간다. 경신(庚辛)이 왕한 화를 만나면 기가 남리(南離, 오(午))에서 흩어진다. 토가 마르고 화가 타오르면 금이 의지할 바가 없다. 목이 뜨고 수가 범람하면 화가 생할 수 없다. 삼하(三夏)에 녹는 금이 어찌 단단하고 강한 나무를 제어하겠는가. 삼동(三冬)의 젖은 흙은 범람하는 물결을 막기 어렵다. 가벼운 먼지와 한 줌의 흙은 끝내 살아 있는 나무의 터전이 아니다. 버려진 쇠와 녹은 금이 어찌 흐름을 불리는 근본이겠는가. 목이 성하면 금이 스스로 이지러지게 할 수 있다. 토가 허하면 도리어 수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 화에 목이 없으면 그 빛이 끝난다. 목에 화가 없으면 그 바탕이 어둡다. 을목(乙木)이 가을에 나면 썩은 것을 꺾고 마른 것을 부러뜨리듯 쉽다. 경금(庚金)이 겨울에 죽으면 모래에 가라앉고 바다에 떨어짐이 어찌 어렵겠는가! 서리 맺힌 풀에 어찌 금을 만날 필요가 있겠는가. 흙에서 막 나온 금은 목을 이길 수 없다. 화는 불꽃이 일기 전에 먼저 연기가 난다. 수는 이미 지나갔어도 여전히 젖어 있다. 대저 수가 차가우면 흐르지 않고, 목이 차가우면 피어나지 않으며, 토가 차가우면 생하지 않고, 화가 차가우면 맹렬하지 않으며, 금이 차가우면 녹지 않으니, 모두 천지의 바른 기운이 아니다. 그러나 만물은 처음 생겨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이루어진 지 오래면 소멸한다. 그 범속을 넘어 성스러움에 드는 기틀과 죽음을 벗어나 삶으로 돌아오는 묘함은, 형상 없이 이루어지고 형체 없이 화하는 것이니, 쓰임을 굳게 함은 근본을 굳게 함만 못하고, 꽃이 번성함이 어찌 뿌리가 깊음만 하겠는가. 또 예컨대, 북쪽의 금은 수를 그리워하여 형체가 가라앉고(수가 많으면 금이 가라앉는다), 남쪽의 목은 재로 날아가 몸을 벗으며(화가 왕하면 목이 탄다), 동쪽의 수는 목을 왕하게 하여 근원이 마르고(목이 성하면 수가 줄어든다), 서쪽의 토는 금을 실하게 하여 자신이 허해지며(금이 많으면 토가 변한다), 화는 토로 인해 어두워지니 모두 태과(太過)한 것이다(토가 많으면 화가 묻힌다). 오행은 중화(中和)를 귀하게 여긴다. 이치로써 구하되 삼가 구차히 말하지 말라. 찬 못의 물을 다 퍼내야 반드시 바닥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