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평진전(子平真詮) 1장 序 · 원문+번역원문+번역원문번역독음인쇄 창의 대상(프린터)에서 「PDF로 저장」을 고르세요. 휴대폰은 공유 → 인쇄 → PDF.

자평진전 子平真詮

沈孝瞻
1장 序 · 원문+번역
원문: 위키문헌 등 공개 판본(교감본 아님) · 번역: AI 초벌 직역(검수 중)

序

予여自자束속發발就취傳전,即즉喜희讀독子자史사諸제集집,暇가則칙子자平평《淵연海해》、《大대全전》略약為위流류覽람,亦역頗파曉효其기意의。然연無무師사授수,而이於어五오行행生생剋극之지理리,終종若약有유所소未미得득者자。後후復복購구得득《三삼命명通통會회》、《星성學학大대成성》諸제書서,悉실心심參참究구,晝주夜야思사維유,乃내恍황然연於어命명之지不불可가不불信신,而이知지命명之지君군子자當당有유以이順순受수其기正정。戊무子자歲세予여由유副부貢공充충補보官관學학教교習습,館관舍사在재阜부城성門문右우,得득交교同동裏리章장公공君군安안,歡환若약生생平평,相상得득無무間간,每매值치館관課과暇가,即즉詣예君군安안寓우談담《三삼命명》,彼피此차辯변難난,闡천民민無무餘여蘊온。已이而이三삼年년期기滿만,僦추居거宛완平평沈침明명府부署서,得득山산陰음沈침孝효瞻첨先선生생所소著저子자平평手수錄록三삼十십九구篇편,不불覺각爽상然연自자失실,悔회前전次차之지揣췌摩마未미至지。遂수攜휴其기書서示시君군安안,君군安안慨개然연嘆탄曰왈:“此차談담子자平평家가真진詮전也야!”先선生생諱휘燡역燔번,成성乾건隆륭己기未미進진士사,天천資자穎영悟오,學학業업淵연邃수,其기於어造조化화精정微미,固고神신而이明명之지,變변化화從종心심者자矣의。觀관其기論론用용神신之지成성敗패得득失실,又우用용神신之지因인成성得득敗패、因인敗패得득成성,用용神신之지必필兼겸看간於어忌기神신,與여用용神신先선後후生생克극之지別별,並병用용神신之지透투與여全전、有유情정無무情정、無무力력無무力력之지辨변,疑의似사毫호芒망,至지詳상且차悉실。是시先선生생一일生생心심血혈,生생注주於어是시,是시安안可가以이淹엄沒몰哉재!君군安안爰원謀모付부剞기劂궤,為위天천下하談담命명者자,立입至지當당不불易역之지準준,而이一일切절影영響향遊유移이管관窺규蠡려測측之지智지,俱구可가以이不불惑혹。此차亦역談담命명家가之지幸행也야;且차不불談담命명家가之지幸행,抑억亦역天천下하士사君군子자之지幸행,何하則칙?人인能능知지命명,則칙營영競경之지可가以이息식,非비分분之지想상可가以이屏병,凡범一일切절富부貴귀窮궁通통壽수夭요之지遭조,皆개聽청之지於어天천,而이循순循순焉언各각安안於어義의命명,以이共공勉면於어聖성賢현之지路로,豈기非비士사君군子자厚후幸행哉재!觀관於어此차而이君군安안之지不불沒몰人인善선,公공諸제同동好호,其기功공不불亦역多다乎호哉재?愛애樂락序서其기緣연起기。乾건隆륭四사十십一일年년歲세丙병申신初초夏하同동後후學학胡호焜혼倬탁空공甫보謹근識식

나는 머리를 묶고 스승에게 나아간 때부터 곧 자부(子部)·사부(史部)의 여러 문집 읽기를 좋아하였고, 틈이 나면 자평(子平)의 『淵海』·『大全』을 대략 훑어보아 그 뜻도 꽤 알았다. 그러나 스승의 가르침이 없어 오행 생극(生剋)의 이치에 대해서는 끝내 얻지 못한 바가 있는 듯하였다. 뒤에 다시 『三命通會』·『星學大成』 등의 책을 구하여 마음을 다해 참구하고 밤낮으로 생각하니, 이에 명(命)을 믿지 않을 수 없음을 환히 깨닫고, 명(命)을 아는 군자는 마땅히 그 바른 것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함을 알았다. 무자(戊子)년에 나는 부공(副貢)으로 관학(官學) 교습(敎習)에 충원되었는데, 관사가 부성문(阜城門) 오른편에 있어 같은 고을의 장군안(章君安) 공과 사귀게 되니 평생의 벗처럼 기뻐하고 서로 뜻이 맞아 틈이 없었다. 매번 관(館)의 과업이 한가하면 곧 군안의 거처에 가서 『三命』을 이야기하며 서로 논변하고 따져 남김없이 밝혔다. 이윽고 3년 임기가 차서 완평(宛平) 심명부(沈明府)의 관서에 세 들어 살다가, 산음(山陰) 심효첨(沈孝瞻) 선생이 지은 자평(子平) 수록(手錄) 39편을 얻고는 나도 모르게 망연자실하여 전에 헤아리고 궁리한 것이 미치지 못했음을 후회하였다. 드디어 그 책을 가지고 가서 군안에게 보이니, 군안이 감개하여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것이 자평가(子平家)를 논한 진전(眞詮)이다!”라고 하였다. 선생의 휘(諱)는 역번(燡燔)이며 건륭(乾隆) 기미(己未)년 진사(進士)가 되었다. 천부의 자질이 영민하고 학업이 깊어, 조화(造化)의 정미함에 대하여 참으로 신묘하게 밝혀 변화가 마음을 따르는 분이었다. 그가 용신(用神)의 성패(成敗)·득실을 논한 것, 또 용신(用神)이 성(成)으로 인해 패(敗)를 얻고 패(敗)로 인해 성(成)을 얻는 것, 용신(用神)은 반드시 기신(忌神)과 아울러 보아야 한다는 것, 용신(用神)과 [다른 신의] 선후 생극(生剋)의 구별, 그리고 용신(用神)의 투(透)와 전(全), 유정·무정, 유력·무력의 분별을 보면, 비슷하여 의심스러운 털끝만 한 차이까지 지극히 상세하고 빠짐없다. 이는 선생 일생의 심혈이 온전히 여기에 쏟아진 것이니, 이를 어찌 묻혀 사라지게 할 수 있겠는가! 군안이 이에 판각에 부칠 것을 도모하여 천하의 명(命)을 논하는 자들을 위해 지당하여 바뀌지 않는 기준을 세웠으니, 일체의 막연하고 오락가락하며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고 표주박으로 바다를 재는 식의 지혜에 모두 미혹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또한 명(命)을 논하는 이들의 다행이다. 또 명(命)을 논하는 이들의 다행일 뿐 아니라 천하 사군자(士君子)의 다행이기도 하니, 어째서인가? 사람이 명(命)을 알 수 있으면 다투어 경쟁하는 마음이 그칠 수 있고,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물리칠 수 있어, 무릇 일체의 부귀·궁통·수요(壽夭)의 만남을 모두 하늘에 맡기고, 차근차근 각자 의(義)와 명(命)에 안주하여 함께 성현의 길에 힘쓸 것이니, 어찌 사군자의 큰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를 보면 군안이 남의 선함을 묻어 두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에게 공개하였으니, 그 공이 또한 많지 않은가? 이에 기꺼이 그 연기(緣起)를 서술한다. 건륭(乾隆) 41년 병신(丙申)년 초여름, 동후학(同後學) 호혼(胡焜) 탁공보(倬空甫)가 삼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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